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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더러는 질펀하게 무너지고 싶다 /윤영

에세이향기 2021. 5. 1. 22:29

나도 더러는 질펀하게 무너지고 싶다 

 

                                                                                                                                윤영

 

 동해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건 오전 10시쯤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벼르던 여행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구룡포로 가는 옛길을 따라 조개를 잡고 볼락회에 소주 한잔 마시다 죽은 듯 자야겠다고 먹은 마음을 포기하기에는 마음한테 미안해졌다. 남들이 보면 시답잖은 여행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간절한 염원이었다. 이판사판으로 가보는 데까지 가보자며 나는 도시락을 싸고 남편은 텐트와 침낭을 챙겼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사는 일이잖은가. 호미곶을 지나 구룡포항에 닿을 즈음이면 파도가 지쳐 있을 거라는 희망은 출발할 때부터 가지지 말았어야 했다. 일기예보는 빗나가지 않았다. 파도는 천년 묵은 한을 토해 해안반도 둘레길을 덮쳤다. 긴 목덜미를 자랑하듯 제철소 수십만 개의 불빛만 바다에 녹아 있었다. 다시 찾아간 곳은 어촌의 그만그만한 포구였다. 사는 일이 눅진하여 역마살이 낄 때 드나들던 곳이다. 길과 바다의 경계가 지워졌다. 식당들은 일찌감치 문을 닫아걸었다. 유월 밤바다는 괴괴하다.


 마지막으로 양포와 구룡포 사이에 있는 바다낚시 공원으로 차를 돌렸다. 역시나 마찬가지다. 으르렁거리는 파도는 겁도 없이 바다를 삼키고 내뱉으며 산산조각을 낸다. 어쩌란 말이냐.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기엔 억울함마저 들었다. 오기가 생겼다. 무슨 통쾌한 일이 없을까를 고민하다 포항에 사시는 형님 내외를 불렀다. 통쾌하고 가슴 뛰는 일이래야, 고작 태풍의 눈에서 놀아보자는 정도였다. 이윽고 우린 해안가에 텐트를 쳤다. 조개잡이야 멀찍이 달아났지만 모처럼 한 지붕 아래에서 저녁을 먹고 등을 맞대며 넷이 누우니 나름 재미가 쏠쏠하다. 밤은 익을 대로 익어가건만 태풍은 잦아들 기미가 없다. 형님은 어느새 적응되었는지 얕은 코까지 골며 단잠에 빠져들었다. 나도 설핏 잠이 들 찰나 아주버님과 남편이 나누는 대화가 나분나분 들린다.


  "오늘 같은 날 농어낚시가 제격인데 말이죠. 채미라도 있으면 시도해 볼 텐데."
  나는 혼미한 잠결이지만 호기심이 생겼다.
  "이런 날씨에 농어가 왜 잡기 좋아요?"
  "농어는 바다가 고요한 날에는 잡기 힘들지. 경계심이 워낙 많아 입질을 안 하니까. 아주 영리한 놈이야. 하지만 파도의 높이가 걷잡을 수 없거나 바닥이 뒤집히고 태풍이 몰아치면 스스로 경계를 풀어버리는 거야."


 어째 농어의 영리함보다 안쓰러움이 먼저 든다. 평소에 얼마나 긴장 상태로 살았을까. 나름대로는 다른 어종에 비해 똑똑한척하며 우월감마저 들었으리라. 하물며 녀석인들 풀어지고 싶지 않았을까. 혹 날씨를 핑계 삼아 일부러 경계를 풀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아무튼, 그것이 농어, 그 녀석의 본능이든 자의에 의한 방식이든 꾼들의 입질에 걸린들 어떤가. 오늘따라 녀석이 부럽다 못해 나도 잠깐 농어가 되고 싶은 저녁이다.


 나는 한 달 전 '경계성암'이라는 진단을 확정받았다. 수술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득해졌다. 인간과 신의 사이를 연결해주는 무당이 잠시 다녀간 듯했다. 돼지머리 앞에서 춤추던 단골무당의 희번덕이는 칼날이 악령을 삼킨 채 언제 내게 꽂힐지 두려웠다. 지리산의 성모천왕 앞에 빌고 싶었다. 진한 선팅을 한 자동차에 갇힌 기분이었다. 빛과 그늘 사이에 오래 앉아 있었다. 터지기 직전까지 불어놓은 풍선 신세였다. 가시가 두려워 장미꽃밭에 갈 수도 없었다. 도살장에서 잡아들인 붉은 살점들이 정육점 냉동고에서 급냉으로 얼어가듯 경직되어 갔다.


 나는 경계에 선 여자였다. 한 끗 차이로 간당간당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누가 보면 사람구실 하기를 포기한 줄 알았을 게다. 먹고 자고 노는 일상성마저 시시해졌다. 혹 대문밖에 기다리던 암세포가 문을 여는 동시에 들어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오면 날밤을 새웠다. 어차피 한번 태어난 인생인데 심오할 필요가 뭐 있어. 한방의 쾌락으로 살면 되지 라는 마음과 어차피 한번 태어난 인생인데 제대로 살다 가야지 라는 마음이 하루에도 수없이 싸움질해댔다. 한 달이 백 년처럼 흘러갔다.


 낚시 이야기를 하던 두 사람도 잠이 들었는지 기척이 없다. 새벽 2시. 좀체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오니 바다는 여전히 길길이 날뛴다. 해안가 난간에 등을 보인 낯선 사내가 혼자 바다를 바라본다. 이윽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지 꽤 긴 시간을 보낸 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무엇을 찍었을까. 나는 한잠이라도 자야겠다 싶어 텐트 속으로 들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눈을 떴을 때 형님은 아직 곤한 잠에 빠졌다. 이미 남편과 아주버님은 갯바위로 조황을 보러 떠났다. 아침이 뿌옇게 밝아오면서 지난밤이 바다도 서슬 푸른 장난을 멈춘 듯하다.


 선득한 기운이 돈다. 셔츠를 껴입고 작은 카페가 있는 계단을 올랐다. 야트막한 언덕 아래 말굽 모양의 구룡포 항구가 저만치 보인다. 해송림을 지나 하정리 정자까지 가볼 참이다. 드문드문 쭉정이만 남은 보리밭에서 접시꽃을 보자 장난기가 발동한다. 꽃잎을 한 장씩 떼어 보릿대에 붙였다. 어린 시절 삽작길에 붉게 물들이던 꽃이었다. 이른 아침 감포에서 들어오는 자동차들이 창문을 내리고 힐끔힐끔 내다본다. 계면쩍은 나는 왔던 길을 돌아 자갈톱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해풍에 몸 말리는 갯메꽃 군락지에서 또 한참을 앉았다. 간밤의 요동친 태풍 탓인지 더러는 상처 입은 꽃잎들이 아리다. 여남은 척의 큰 배가 해무를 흐트러뜨리며 먼바다로 나아간다. 사는 일이 참 거룩하겠다는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든다. 왜 들었을까. 


 며칠 전 잔광이 내려앉은 오후 블라디보스톡에서 선배가 보내준 문자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아닌 병명에 자신을 가두지 말아요. 경계성암이라서 다행이고 고맙다고 생각해야지. 더 아프고 더 절박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데요. 이제부터라도 자신을 잘 챙기고 다니라는 신호일 거에요.' 벌거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일축성 문장에 불안이 눈 녹듯 사라지는 거로 봐서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라도 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니면 길을 나서니 생각이 유연해진 걸까.

 

 아무튼, 나는 지금 갈림길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아프지 않을 이유도, 건강할 이유도 된다. 여름에 겨울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모종을 뿌리면서 잎을 생각하고 꽃과 열매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극성스럽게 살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생각을 확 바꿔버릴 수 있는 단세포적인 내가 믿기지 않아 어금니에 쥐가 날 지경이다. 언제쯤이면 솔직한 나를 만날 수 있을까. 다만 나도 이 시점에서 한번쯤은 무너지고 싶었을 뿐이다. 농어 그 녀석처럼 날씨를 핑계 삼든 따뜻한 사람이 던진 입질을 핑계 삼든 덥석 물어 질펀하게 풀어지고 싶다. 더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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