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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깊이/김사인

에세이향기 2022. 8. 28. 17:32

풍경의 깊이/김사인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 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 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산다는 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우주의 근원은 아주 소소한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눈여겨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 키 낮은 풀들의 외로운 떨림이 우주를 움직이는 근원으로 보는 이유가 있다. 가녀린 것들의 짧은 한 순간 움직임이 우주의 중심이 되는 것. 우주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탓이다. 그 살아 있음의 다른 상태를 고요로 보고 있다. 동중정(動中靜)이고 정중동(靜中動)인 것. 움직임과 멈춤이 섞여 있는 것이다. 소소하고 가녀린, 별 것 아닌 것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 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한계가 없는 무한한 세상이 펼쳐진다. 그 무한 속에서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하는 세상에 대해서 꿈을 꾸고 있다. 내가 누울 자리를 찾는 일, 무한을 꿈꾸는 일, 고요 속으로 들어가는 일, 어쩌면 사는 일이 꿈결일 수도 있다. 끝까지 따라오는 냄새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이 나를 살린다. 연기법(椽起法)의 이치, 인드라망(Indra網), 우주의 모든 것은 서로가 얽힌 관계인 것이다. <수필가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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