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시

필사적으로/김사인

에세이향기 2022. 8. 28. 17:29

 

비 오고, 술은 오르고 속은 메슥거려 식은땀 배고,비는 오는데, 어디 마른 땅 한 귀퉁이 있다면 이 육신 벗어 던졌으면 좋겠는데, 어쩌자고 눈앞은 자꾸 아련해지나, 양손에는 우산과 가방 하나씩 쥐고, 자꾸 까부라지려하네. 비는 오고, 오는데 몸뚱이는 젖은 창호지처럼 척척 늘어지는데, 기억에도 희미한 옛벗들 그림자, 환등과도 같이, 가슴에 예리한 칼금 긋고 지나가네. 한 손에 우산, 또 한 손엔 내용불상의 가방을 쥐고 필사적으로, 달리 마땅한 폼이 없으므로 다만 필사적으로, 신발에 물은 스미고, 신호는 영영 안 바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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