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부레옥잠
배한봉
서울 가서 보았다, 지난 여름
서울 인사동 가서 보았다
돌확에 담겨 보랏빛 꽃 피운 부레옥잠
먼지 뒤집어쓴 채 더러는 잎 찢어지고
더러는 꽃대 꺾인 채
아직도 살아 있다고 웃는 거 보았다
그때 나는, 차마 죽지 못해 살아야 하는 웃음을
울음보다 더 큰 비명을 들었다
잎 푸르지 않고 꽃 피우지 않으면
쓰레기일 뿐인 서울의 부레옥잠
인사동 휘돌아 나가며
그 길목 작은 공원에서 소주병 들고
킬킬거리는 또다른 부레옥잠도 보았다
뿌리 상할 대로 상한 노숙의 신음, 노숙의 악취
세상 홍수에 삶의 둑 붕괴된 인간부초들이
하오의 뜨거운 태양 빛에 타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한 곳에 뿌리박고 살고 싶지만
삶이란 때로, 얼마나 비정한 현실의 볼모인가
마른 잎은 마른 대로, 시든 꽃은 시든 대로
물 속 거름으로 다 받아주는 세상
쓰레기와 거름, 종잇장보다 얇은 그 차이를
썩어서 또 하나 탄생의 힘이 되는 비밀 아는
우포늪 같은 세상 어디 없나
잘 있거라, 눈물들아 서울의 슬픔들아
서울을 떠나오며 나는
돌확에 부레옥잠을 띄우고 꽃 피기 기다리는
서울에게, 서울의 희망에게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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