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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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노각正傳/김현주

에세이향기 2021. 5. 10. 14:25

노각正傳

 

김현주

 

 

끝물을 수확한 오이 밭고랑에서 노각이 흔들흔들

에 누렇게 쇤 할아버지를 끌고 가는

녹슨 자전거 바퀴가 흔들흔들

어젯밤 천둥번개에도 끄떡없던 노각이 쿵, 하고

누렇게 쇤 등짐을 아무렇게나 부려놓네

아이코, 이 웬수야! 비틀거리는 생의 주름살을

늦은 햇살이 잡아당겨 칭칭 감고 있네

어지러움 증처럼 천천히 되감기는 녹슨 바퀴살 사이로

망망한 갈증을 견디고 있는 노각의 굽은 등을 바라보네

헝클어진 몸을 반듯하게 눕히고 흙 묻은 껍질을 벗기자

낡은 런닝 밑으로 쉰내 나는 땀방울이

물컹한 슬픔으로 만져지네

어둡고 험한 삶의 고랑을 더듬더듬 넘을 때마다

더러는 치밀어 오르는 홧덩이를 천천히 꺼내

, 내던지던 곳, 슬픔 같은 별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저기 한 뼘 허공에 머물기 위해

, 하고

맨땅에 아무렇게나 누워 버린 추운 잠

다 이루었다며 노각이 부려놓은 허공이 붉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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