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 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비끄러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쉿!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노동의 새벽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처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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