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7/01 5

[우리말 바루기] ‘금새’일까, ‘금세’일까?

[우리말 바루기] ‘금새’일까, ‘금세’일까? 1. 벚꽃이 ( ) 지고 말았다.2. ( ) 내린 비에 꽃잎이 모두 떨어졌다.다음 중 위의 괄호 안에 적절한 말은?㉠ 금새-밤새㉡ 금세-밤세 ㉢ 금세-밤새3월 기온 상승으로 벚꽃이 예상보다 일찍 피었다 금방 지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지난 주말 꽤 여러 지역에서 벚꽃 없는 벚꽃축제가 열리기도 했다고 한다.문제에서처럼 ‘금새’ ‘금세’ 또는 ‘밤새’ ‘밤세’ 형태가 나오면 어느 것으로 표기해야 할지 헷갈린다. 발음이 비슷해 구분하기가 더욱 어렵다.이럴 때는 무엇의 준말인지 따져보면 된다. 첫 번째 괄호 안에 들어갈 낱말은 ‘금세’가 정답이다. ‘금시(今時)에’가 줄어든 말이기 때문이다. ‘시에’는 줄어 ‘세’가 되므로 ‘금시에→금세’가 된다.둘째 괄호 안에 들어..

우리말 2024.07.01

P. E. N / 조재은

P. E. N / 조재은    P의 언어는 향기로워 그 향기는 현실을 잠시 잊게 했다.P의 얘기는 맑은 날보다는 흐린 날에 더 감미롭고 낮보다 밤에 더 잘 들렸다. 그는 감탄하거나 분노를 삭일 때,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을 때,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푸른 정맥이 드러나는 가늘고 긴 손가락에서 그의 감각적인 매력이 나타났다. 가끔은 짧은 몇 마디로 자신의 깊은 마음을 전하는데,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찰나의 눈빛을 붙잡아야 했다. 나는 항상 긴장하며 그를 응시했다. P의 말은 절규로 들리기도 하고 통한의 신음 소리로도 들렸다. 이러한 감각적인 면에 이끌려 시작된 만남은 시간이 흐르자 감정의 올무가 되었다. 그의 감정에 휘말려 훼척해 가는 자신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약하지 않은 건강한 영..

좋은 수필 2024.07.01

서울여자 / 정재순

서울여자 / 정재순   고갯마루가 간들거렸다. 연보라 꽃이 나풀대는 양산을 쓴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른한 여름날 오후, 한복 차림의 여자는 측백나무가 둘러진 기와집 마당으로 거침없이 들어왔다. 고요한 시골 마을에 알 수 없는 기운이 술렁였다. 일곱 살 소녀가 난생처음 양산을 만난 날이었다.아버지의 아내는 몸매가 늘씬하고 이웃마을까지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미인이었다. 그에 반해 서울여자는 작고 오동통한 체구에 착착 감겨드는 말투를 지녔다. 겉모습처럼 엄마는 청한 목소리였고 그녀는 젖은 듯 비음이 몸에서 묻어나왔다. 경상도 토박이 남자의 가슴에 그 맛이 오죽 달짝지근하였겠는가. 당시 말씨가 그러해 서울여자로 불렀으니 아버지를 염두에 둔 예우였을 것이다.서울여자는 오붓하던 집안에 찬바람을 몰고 왔다. 대..

좋은 수필 2024.07.01

수평 잡기 / 서상민

수평 잡기 / 서상민 이사한 다음 날삐걱거리는 장롱의 수평을 잡기 위해괼 만한 것을 가져오라 시켰다딸아이는 표지가 너덜거리는시집 두 권을 가져왔다열한 번의 이사와어느 날의 화재에도 살아남아책꽂이 후미진 곳에 처박혀 있던 시집을용케 찾아왔다주름이 이마가 되고물 자국이 무릎을 파먹은어두운 안색의 시집에는젊은 날의 소인 같은 곰팡이가 슬었고빼꼭히 써놓은 다짐들은 먼 세월을 다해당도한 편지 같았다마음에 없는 여자에게 아름답다 말할 수 있고비겁한 손을 아무 데서나 불쑥 내미는 나이에무릎을 꿇고 이마에 뻘뻘 땀 흘리면서어긋난 장롱 다리 밑으로시집 두 권을 우겨 넣었다이사한 다음 날난데없이 끌려 나온 두 권의 시집이기울어 가는 살림을 받쳐 주었다​

좋은 시 2024.07.01

나무의 내력 / 조현숙

나무의 내력 / 조현숙​ 진득거리는 머리카락이 자꾸만 목에 휘감겼다. 성하의 햇발을 고스란히 받은 정수리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사방 천지에 뻗친 빛줄기가 출렁거리는 물결처럼 쏟아지는 신작로를 걸어가자니 멀미가 날 듯 어지러웠다. 길은 끝이 보이지 않고 멀기만 했다.​ 엄마가 말해준 곳에 아버지는 없었다. 아버지가 있어도, 없어도 내겐 어려운 임무였다. 그곳에 아버지가 있다고 내 손 잡고 집에 올 리도 없었고, 아버지가 없었다고 말하면 엄마는 또 복장이 터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헛걸음만 시켰네”라고 엄마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 앞에는 아버지의 구두가 놓여 있었다. 종일 달궈진 사택의 방문 하나가 바람 한 점 들어갈 틈 없이 굳게 닫혀 있다. 엄마랑 아버지는 그새 또 싸웠..

좋은 수필 2024.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