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7/18 2

그릇을 읽다 / 강표성

그릇을 읽다 / 강표성   시간의 지문들이 쌓였다. 침묵과 고요가 오랫동안 스며든 흔적이다. 때깔 좋던 비취색이 누르스름한 옷으로 갈아입어도 처음 품었던 복(福)자는 오롯하다. 홀로 어둠을 견딘 막사발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 고인 시간이 주르르 쏟아진다. 한때, 골동품에 마음이 기운 적 있다. 눈요기라도 할 겸 옛 물건을 기웃거리기 시작한 건 고향 집의 그림들을 털린 후에 생긴 버릇이다. 우리가 도시로 이사한 후 누군가 사랑채의 그림들을 귀신같이 도려내 가버렸다. 이에 눈 밝은 큰집 오빠가 쓸 만한 물건들은 서울로 옮겼다는 소식이 뒤따랐고, 한참 뒤에야 시골집에 내려간 나는 살강 한쪽에 엎어진 그릇 하나를 품고 왔을 뿐이다.무시로 쓰던 막사발 그대로다. 이름 있는 도자기도 아니요, 대를 뛰어넘을 만큼 햇수..

좋은 수필 2024.07.18

항아리 우물 /이삼현

항아리 우물 /이삼현 고향집 곳간에는 커다란 쌀독 하나가 있었지요바가지를 든 어머니가 아침저녁으로 퍼 올리던 우물이었지만 늘 말라 있었습니다 어둠을 뚫고 피어나는 연꽃 송이처럼 발그레 동창이 물들 즈음 바닥 긁는 소리에 잠을 설치곤 했습니다 빠지면 풍덩 잠길 우물 앞에서 까치발을 들고 공손히 허리 숙여 깊어진 어머니한 톨이라도 더 식구들을 먹일까고대하는 목마름으로 바닥을 훑곤 했습니다한껏 퍼 담고 싶은 바가지와 맨 바닥이 만나 지르는 비명몇 톨 남은 알곡들이 참새 떼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짹짹거렸습니다 언제 적 끊긴 물길더는 샘솟는 우물이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아홉 식구의 공복이 피가 나도록 긁고 또 긁었습니다  가을 한철, 겨우 차고 넘쳤을 항아리 우물아무리 퍼 담아도 한 바가지 어둠한 바가지 소..

좋은 시 2024.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