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을 읽다 / 강표성 시간의 지문들이 쌓였다. 침묵과 고요가 오랫동안 스며든 흔적이다. 때깔 좋던 비취색이 누르스름한 옷으로 갈아입어도 처음 품었던 복(福)자는 오롯하다. 홀로 어둠을 견딘 막사발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 고인 시간이 주르르 쏟아진다. 한때, 골동품에 마음이 기운 적 있다. 눈요기라도 할 겸 옛 물건을 기웃거리기 시작한 건 고향 집의 그림들을 털린 후에 생긴 버릇이다. 우리가 도시로 이사한 후 누군가 사랑채의 그림들을 귀신같이 도려내 가버렸다. 이에 눈 밝은 큰집 오빠가 쓸 만한 물건들은 서울로 옮겼다는 소식이 뒤따랐고, 한참 뒤에야 시골집에 내려간 나는 살강 한쪽에 엎어진 그릇 하나를 품고 왔을 뿐이다.무시로 쓰던 막사발 그대로다. 이름 있는 도자기도 아니요, 대를 뛰어넘을 만큼 햇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