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7/28 2

열무가 있는 여름 / 배혜숙

열무가 있는 여름 / 배혜숙    햇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날씨는 싱싱하다 못해 퍼덕퍼덕 살아있다. 그래서 여름은 밝다. 오만한 하늘이 세상을 굽어보는 날, 열무김치를 담는다. 냉장고 속, 여러 개의 김치통에서 제각기 다른 맛의 열무김치가 익어가고 있는데 시장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무청이 생생한 열무를 산다. 씹으면 아삭아삭 상큼한 맛을 낼 것 같은 연한 줄기와 그 줄기에 매달린 파릇한 초록의 잎사귀가 생명의 소리로 나를 부른다. 가지런히 묶여서 좌판 위에 놓여 있는 열무를 보면 생각 없이 두 단을 사고 만다. 열무를 풀어헤치자 식구들이 한심한 듯 쳐다본다. 여름내 밥상 위에 올린 반찬은 거의 열무김치였다. 끼니때마다 열무 비빔밥이나 열무 국수, 심지어는 샌드위치에도 열무김치를 듬뿍 넣어주었다...

좋은 수필 2024.07.28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 국명자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 국명자  봄은 산골짜기에서 맞닥뜨려야 한다. 잠시 들르거나 멈추어 선 길손이어도 안 된다.새벽 미명부터 땅거미 내려앉아 어두움이 짙게 깔릴 때까지, 마루와 마당으로 시시각각 다른 모양 되어 들르는 봄의 미세한 모습들을 눈치챌 수 있는 오두막에서 살고 있다면 딱 좋겠다. 고샅으로 내달린다 해도 논두렁 밭두렁이 종착지가 되고, 이마에 손 얹어 먼 눈 뜬다 해도 앞산 뒷산 자락에서 멈추는 그런 산골 삶이라면 더욱 좋겠다.자그마한 남향 집, 낮은 울타리 두른 작은 마당에 서 있으면 가만가만 몸 뒤척이기 시작하는 봄의 첫 기척을 듣는다. 나무들을 깨우는 거센 바람은 당당하게 입성하는 봄의 첫 발자욱 소리다. 간단없이 불어대는 그 바람은 냉기와 침묵만으로 일관하던 골짜기가 드디어 기적..

좋은 수필 2024.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