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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갈망과 좌절의 비린내 나는 삶, 물고기의 표정들/이송희

에세이향기 2023. 5. 30. 12:55

《시조춘추》2011. 겨울




기획특집《시조, 물고기를 낚다》




갈망과 좌절의 비린내 나는 삶, 물고기의 표정들




이 송 희






1.


이번 계절에는 물고기를 소재로 취한 작품들을 읽는다. 다른 대상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물고기는 그 종류에 따라 다양한 특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인간의 다채로운 살림살이와 비유되어 시적 소재로 차용되어 왔다. 특히, 납작한 모양새를 하고 있으면서 눈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 가재미, 삭힐수록 암모니아 냄새가 더 진해지는 홍어, 강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 매 맞고 부러져서 더욱 슬픈 북어, 그 외에도 숭어, 꽁치, 복어, 새우, 거북 등은 시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한다. 시인은 물고기의 속성을 인간 삶의 다양한 양태와 연결 지어 때로는 풍자와 해학을 동반하고, 때로는 에로티시즘적 상상력과 동화적 상상력을 동반하면서 형상화한다.
시를 형성하는 중요한 장치인 비유는 의미 생성의 원리이면서 세계를 이해하는 시적 산물이다. 시인이 특정 비유를 활용하여 시를 쓴다는 것은 그 비유에 내포된 특정 세계관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며, 시인의 세계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학 사전󰡕에 의하면 비유는 일정 사물이나 개념(A)을 뜻하는 술어(B)로써, 다른 또 하나의 대상이나 개념을 의미할 수 있도록 언어를 쓰는 과정 또는 그 결과이다. 이때 두 개념의 통합에 의해 복합 개념이 형성되는데, 이것이 X라는 것이다. 즉 두 개의 개념이 상호 결합되어 비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형식의 자유가 많이 보장되지 않은 정형시에서도 비유는 다채롭게 쓰인다. 다음의 작품들은 물고기의 속성 혹은 화자가 당면한 상황이 또 다른 상황과 상호 결합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는 다음 시편들에서 시인들이 형상화하는, 다양한 비유의 원리를 따라가며 그 깊은 사유 속에서 개성적인 세계관을 만나게 될 것이다.




2.


포장집 낡은 석쇠를 발갛게 달구어 놓고
마른 비린내 속에 앙상히 발기는 잔뼈
일테면 시란 또 그런 것, 낱낱이 발기는 잔뼈
 
-가령 꽃이 피기 전 짧은 한때의 침묵을
-혹은 외롭고 춥고 고요한 불의 극점을
-무수한 압정에 박혀 출렁거리는 비애를
 
갓 딴 소주병을 정수리에 들이부어도
미망의 유리잔 속에 말갛게 고이는 주정(酒精)
일테면 시란 또 그런 것, 쓸쓸히 고이는 주정(酒精)
- 박기섭, 「꽁치와 시」 전문


이 시는 “꽁치”와 “시”를 병치시키면서 꽁치가 구워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화자의 시에 대한 정의와 깨달음으로 연결하고 있다. 특히 첫 수 종장과 마지막 수 종장의 유사한 의미구조의 반복과 어휘의 반복이 가져오는 리듬감이 시의 현장감을 살리는 효과를 준다. “포장집 낡은 석쇠”에 꽁치를 구워 먹으며 그 “마른 비린내 속에 앙상히 발기는 잔뼈”를 통해, 시란 것이 이 “낱낱이 발기는 잔뼈”라는 의미를 이끌어 낸다. 그리고 “미망의 유리잔 속에 말갛게 고이는 주정”처럼 시란 또 “쓸쓸히 고이는 주정”이라고 표현한다. 포장집 낡은 의자에 걸터앉아 늦저녁 꽁치 안주를 씹으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화자는 시인이라는 존재론적 고독에 젖은 존재다.
“가령”이라는 어휘 속에서 알 수 있듯이 둘째 수는 첫 수의 “시란 또 그런 것, 낱낱이 발기는 잔뼈”에 대한 부연에 해당한다. 그것은 “꽃이 피기 전 짧은 한때의 침묵” 혹은 “외롭고 춥고 고요한 불의 극점”. “무수한 압정에 박혀 출렁거리는 비애”같은 것으로 은유된다. 꽁치가 익기까지, 꽁치는 뜨거운 고통과 아픔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외롭고 춥고 고요한 불의 극점을 견디면서 무수한 압정에 박혀 출렁거리는 비애의 순간들이 벌겋게 달궈놓은 석쇠 위에서 고통스럽게 익어간다. 시를 쓰는 일은 결국 이렇게 고통과 슬픔의 잔뼈를 낱낱이 발기는 것과 같을까. 그는 시란 것은 “쓸쓸히 고이는 주정” 같은 것이라 이야기한다. 포장집 석쇠 위에 익어가는 꽁치를, 창작의 고통을 드러내는 과정으로 유추하는 시인의 감각과 비유가 돋보이는 시다.
 
못에 찔려 잠드는 날들이 많아졌다
좌판 위 마른 북어의 정물처럼 차갑게 누워
가슴을 짓밟고 가는 구두소리를 듣는다
뚜벅뚜벅 그들처럼 바다에 닿고 싶다
아무렇게나 밀물에 언 살을 내 맡겨 보면
맺혔던 실핏줄들이 하나 둘 깨어날까
내 꿈들은 북(北)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고
하얗게 녹슨 생각들이 부서져 쌓이는 밤
뜨거운 피를 흘리며 깊은 잠에 들고 싶다
- 이달균, 「북어」 전문


예로부터 명태는 훌륭한 아들을 많이 낳고 푸짐한 알처럼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유래가 있어 제사나 고사 상에 올린 뒤 북어를 문 위에 걸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3개월 이상 얼었다 녹는 것을 반복하면서 자연 바람에 건조되어야만 제 맛을 내는데, 덕대에 거는 즉시 얼어붙는다. 그리고 매서운 추위에 살이 얼고 풀리며 북어가 된다. 덕장에서 풀려난 북어는 싸리나무에 입이 꿰여 팔려나가고 다시 방망이에 두들겨 맞으니 속이 텅 비어 있다. 이렇게 북어가 되는 과정은 쓰리고 아픈 인간사를 동반하면서 현대시의 소재로 많이 차용되었다.
이 시는 자신이 처한 절망적 상황이 마치 말라 짜부라진 북어의 삶과 다를 바가 없음을 이야기하면서, “뜨거운 피를 흘리며 깊은 잠에 들고 싶”다는 소시민의 소망을 형상화하고 있다. 딱딱하게 말라붙어 볼품없고 불쌍한 북어처럼 화자는 바닥에 차갑게 누운 제 “가슴을 짓밟고 가는 구두소리를 듣는다”. “내 꿈들은 북(北)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고 박제된 희망들만 좌판 위에서 정물처럼 놓인 채 “못에 찔려 잠드는 날들이 많아”지고, 가슴을 짓밟히는 화자의 삶은 “바다에 닿”지도 못하는 처량한 신세다. 온 몸을 찌르는 “못”과 가슴을 짓밟는 “구두소리”는 화자의 삶을 더욱 더 절망의 수렁으로 몰아넣는 현대사회의 합법적인 폭력을 상징한다. “아무렇게나 밀물에 언 살을 내 맡겨 보면/ 맺혔던 실핏줄들이 하나 둘 깨어날까”라는 말 속에서 소시민들의 마른 어깨, 그 힘겨운 삶의 실체가 딱딱하게 만져진다. 저항할 틈도 없이 딱딱하게 말라붙어 가는 존재의 밤은 “바닥에 닿고 싶”은 꿈을 꾸며, 차라리 “뜨거운 피를 흘리며 깊은 잠에 들고 싶”은 소망으로 깊어만 간다.
최승호의 「북어」 역시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과 “빳빳한 지느러미”를 가진 북어를 “막대기 같은 사람들”로 비유하면서 절망적인 현대인의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들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라는 부분에서 너도 나도 북어인 쓸쓸한 세상을 곱씹게 한다. 이지엽의 「북어」에서는 북어의 절망이 아픈 속을 달래주는 희망의 의미로 치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매 맞고 부러져서/ 추위 속에 꽁꽁 얼다가도// 절망을 더 이상/ 절망이라 부르지 말자// 아침상/ 속을 행구며// 햇살은/ 너무 부셔……”라는 표현 속에는 절망의 깊은 바닥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려는 시인의 의도가 담겨 있다. 또한 배우식의 「북어」는 시적 화자를 북어로 설정하여 북어의 절망을 참 재미있게 형상화했다. “사람한테 잡혀가도 입을 크게 벌리고만 있으면 산다고 아버지한테 귀 닳도록 들었습니다. …… 눈 하나 깜박대지 않고 크게 뜨고 있는 내가 무섭지요. 벌벌 떨리지요?”라는 부분에서는 짙은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술 취한 친구의 한잔을 위하여
 
잘 삭은 홍어 되어 몸속으로 빨려든다면
 
어두운 살의 바다에 독한 냄새로 남으리
 
 
해일을 만나면 해일로 뒤집히고


알몸으로 만나면 알몸으로 섞이어
 
다시는 환생치 못할 썩어 푹 썩어 있을
- 김영재, 「홍어」 전문


전라도의 특산물로, 가로로 넓적하고 꼬리가 긴 근해어로서의 홍어는 그 맛과 향이 독특해서 지독하게 힘든 삶의 단면이나 에로티시즘적 상상력으로 그려져 왔다. 단 두 수의 시 속에서 잘 삭은 홍어의 맛과 일상적 풍경 속에서 접하는, 따뜻한 섞임의 미학을 만날 수 있다. “술 취한 친구의 한잔을 위”해 화자는 “잘 삭은 홍어”가 되어 그의 “몸속으로 빨려든다면” “어두운 살의 바다에 독한 냄새로 남으리”라고 다짐한다. 그것은 “해일을 만나면 해일로 뒤집히고” “알몸으로 만나면 알몸으로 섞”여도 변하지 않을 아름다운 “섞임”의 정신으로 이어진다. “다시는 환생치 못할 썩어 푹 썩어 있”을 때 만나는 진정한 홍어의 맛을 친구의 마음속에서 더욱 깊게 삭히는 것이다. 시인은 허물없는 친구와 만나 술을 마시며 홍어를 안주 삼아 먹는, 이 일상적인 풍경을 통해서 이기적인 욕망으로 이해타산적인 만남에만 눈이 먼 현대인들의 인간관계를 은밀히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문혜진의 시 「홍어」에서는 홍어의 특유한 향을 “씻어도/ 씻어 내도/ 돌아서면 밥 냄새처럼 피어오르는 가랑이 냄새”로 비유하며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는 밤/ 붉어진 눈으로/홍어를 씹는” 외로운 밤의 풍경을 에로틱하게 표현한다. 이정록의 「홍어」 역시 “얼어 죽은 남편과 아픈 큰애와/ 박복한 이년을 합치면,/ 그게 바로 내 인생의 삼합이라고” 말하는 목포 홍어집 할머니의 쓸쓸하고 고단한 삶을 에로티시즘적으로 그려냈다. 한편, 이지엽의 시 「홍어」에서는 “기꺼이 살을 헌납하는/ 톡 쏘는, 알싸한, 붉은, 썩은” 홍어의 속성을 분노와 슬픔에 타오르던 사내의 삶으로 은유하고 있다.


  숭어도 꿈 있당께 힘차게 도약하는 꿈


  굴엿목 뛰어올라 구메구메 날 알리는 숭어를 숭어답게 맹그는 피할 수 없는 운명 꼬랑댕이로 수면을 쳐 수직으로 솟구칠 때 아흐 그 황홀감 해보지 않으면 모른당께 근디 하강할 때 몸 한번 비틀어 바라본 꺼꿀로 서서 본 세상은 겁나게 무섭지라우 낚시 바늘에 먹기 좋은 미끼가 널린 세상 미끼를 물어야만 살 수 있다능 게 싫당께 한 번 솟구침으로 환희 맛볼 수 있다면 마지막 죽음 흔쾌히 받아들일 것 같은디 날것 즐기는 감바리가 주둥이에 입 맞추고 온몸 파르르 떨며 오르가즘 느끼고 절정의 감탕소리 곰비임비 지르는 꿈이지라 근디 말이시 숭어 꿈만 이러것소 사람 꿈도 같을 텐디
- 오종문, 「숭어의 말」 일부


숭어는 예로부터 음식, 특히 고급 술안주로 쓰이기도 하며, 약재로도 귀하게 여겨온 생물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숭어의 말 중에서도 숭어의 꿈에 대해 전하고 있다. “숭어의 말”이라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이 시는 숭어를 화자로 내세우며 숭어의 말들을 인간의 삶에 유추하고 있다. 조용한 바닷가에서 햇살을 받으며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은 숭어를 숭어답게 하는 가장 멋진 모습이다. “꼬랑댕이로 수면을 쳐 수직으로 솟구칠 때 아흐 그 황홀감”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표현한다. 숭어는 물 위로 계속 뛰어오르곤 하는데, 빠르게 유영하면서 한편으로 꼬리지느러미로 수면을 강하게 쳐 1.2~1.5m정도까지 점프를 한다고 한다. 약 45도 각도로 튀어 오르며 그 자세 그대로 떨어지는데, 사실 숭어가 수면 위로 튀는 이유는 아직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한다.
숭어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힘차게 도약하는 꿈”이다. 그러나 수직으로 솟구쳐 오를 때 느끼는 황홀감이 있는 반면, 하강할 때 몸 비틀어 바라본, 거꾸로 서서 본 세상은 무섭기까지 하다. “낚시 바늘에 먹기 좋은 미끼가 널린 세상 미끼를 물어야만 살 수 있다”는 운명이 보이기 때문이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건너편에 삶이 웅크리고 있는 상황은 비단 숭어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한 번 솟구침으로 환희 맛볼 수 있다면 마지막 죽음 흔쾌히 받아들일 것 같”다는 말은 숭어의 비극적이고 처절한 운명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한 꿈은 숭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네 소시민들의 꿈도 마찬가지란 점에 시인의 의도가 숨어 있다. 낚시 바늘에 먹기 좋게 걸린 미끼는 숭어를 유혹하는 미끼이기도 하지만, 세상 어딘가에 힘없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미끼이기도 하다. 분수의 솟구침이 그렇듯이, 숭어가 한때 솟구치는 것은 항상 필연적인 떨어짐을 동반한다. 이상을 향한 꿈은 현실 앞에서 가차 없이 무너진다. 우리도 결국 숭어와 같은 운명인 것을. 미끼인 줄 알면서도 덥석 물어야만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 아니던가.


  왕이시여, 피하소서. 당나라군이 성 안에…….


  놓아라, 이놈들아. 짐을 어디로 데려가느냐. 내 친히 갑옷 입고 눈알 부라리며 출정하면 드넓은 바다가 모두 왕국의 영토였느니, 쏘가리의 충언을 물리친 탓이로다. 고얀 놈들 감히 용포 위에 소금을 뿌리다니. 불판에 놓일지라도 난 눌어붙지 않을 테다. 死공명이 生중달을 쫒듯 끝끝내 네 놈들을.


  들어라! 너희 왕은 자결했다, 살고 싶거든 드러누워라.
- 박성민 「왕새우 소금구이」 전문


이 시는 풍자와 해학의 원리로 소금구이 요리의 과정과 역사의 한 장면을 결합하여 사설조로 구사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소금구이를 하는 요리의 한 과정과 백제의 멸망으로 추정되는 역사적 장면을 결합하면서 시인은 현대시조의 소재와 기법에서 새로운 융합을 시도한다. 구어체를 활용하여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이 작품은 실제 인물을 재현하듯 직접화법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점에서 독자로 하여금 당대 상황에 대한 상상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 시는 각 장의 화자를 다른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작품 전반에 팽팽한 긴장감을 감돌게 한다. “왕이시여, 피하소서. 당나라군이 성 안에…….”라는 초장에서 당나라군이 성 안에 침입했음을 알리는 첫 수의 화자는 폐망해가는 백제의 장군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해상 대제국이었던 백제의 멸망기가 아닐까 짐작한다. 전성기 때에 중국의 요서와 산동 지방, 왜 등을 지배했던 해상제국 백제는 이 시에서 “내 친히 갑옷 입고 눈알 부라리며 출정하면 드넓은 바다가 모두 왕국의 영토였느니”로 표현된다. 따라서 둘째 수의 화자는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다. 왕새우에 소금을 뿌리고 불판에 얹는 장면을 의자왕의 최후의 모습으로 은유하는 중장의 이 장면은 단순한 웃음만을 유발하지 않는다. ‘해동증자’라 불리며 성군 소리를 들었고, 멸망하기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신라를 공격해 30여 성을 빼앗았다는 기록이 전할 만큼 강한 군주의 모습을 보인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의 침입을 받고 무기력하게 무너져가는 현장을 재현한다. 당나라 장군을 화자로 한 종장 “들어라! 너희 왕은 자결했다, 살고 싶거든 드러누워라.”는 패망한 백제의 군사들과 백성에게 항복을 강요하는 외침이다. 따라서 이 말은 당나라 장군이 백제군과 백성을 기만하는 말이다. 사건이나 상황의 부조화에서 비롯되는 상황적 아이러니가 잘 드러난다.
이 작품은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 속에서 강자에 의해 지배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은밀히 비판한다. 무너진 나라의 왕을 끌고 억지로 불판에 놓는 이 장면은 마치 강자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힘없고 빈곤한 민중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와 질서 체계를 표상하는 “불판”에 놓일지라도 눌러 붙지 않겠다는 기개와 자존심은 연민의 정서를 유발한다.
 


바깥소식 궁금해진
버들붕어 송사리가
연못 속 꽃봉오리,
하나 둘씩 밀어 올린다.
어느새
세상에 앉아
제 몸 여는 빨간 연꽃.


일제히 물고기의
말들이 날아오른다.
사람의 마을 향해
환하게 열려있는
저 꽃은
빨간 우체통
두근거리며 바라본다.


편지를 배달하는
체관 물관 분주하고
글 읽는 말간 눈의
물고기가 보인다.
오늘도
연꽃우체통에
편지 한 장 넣는다.
- 배우식, 「연꽃우체통」 전문


이 시는 물고기의 속성을 어떤 대상에 비유하기보다, 우체통으로 비유한 연꽃을 매개로 인간과 물고기의 교감을 그려내고 있다. 꽃이 피는 장면을 “바깥소식 궁금해진/ 버들붕어 송사리가/ 연못 속 꽃봉오리”를 밀어 올리자 세상 밖에 모습을 내밀며 빨간 연꽃이 제 몸을 여는 것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물 속(버들붕어 송사리) - 연꽃의 물관, 체관(교감의 매개체) - 물 밖(빨간 연꽃)”의 구조가 되는 것이다. 물 속 세상에서 들리는 물고기의 말과 물 밖 세상에서 들리는 사람의 말을 이어주는 우체통이 바로 연꽃이다. 시인이 연꽃을 우체통으로 인식하는 순간, 체관과 물관은 편지를 배달하는 우체부가 되며 송사리들의 말은 편지 에 적힌 말이 되는 것이다. “글 읽는 말간 눈의/ 물고기가 보인다”는 표현에서 인간과 자연의 교감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시인은 동화적 상상력에 의해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풍경, 그 물아일체적인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인간은 상호의존적인 자연세계의 일부이며, 전체로서의 자연의 일부임을 시사해주고 있는 것이다.




3.


“시인이 창작한 제2의 자연이 시다.”라고 했던 조지훈 시인의 말처럼 시는 또 다른 자연이다. 시인은 어떤 대상과의 비유를 통해 자연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이를 통해서 독자와 소통한다. 따라서 비유는 인간과 세계, 작가와 독자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수단이며 장치인 셈이다. 이러한 자연의 일부인 물고기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순수한 호흡을 불어넣는 아가미와 같은 존재로 우리의 삶에 맥박을 불어넣는 소중한 가치인 것이다. 박기섭 시인의 「꽁치와 시」에서 창작의 고통을, 이달균 시인의 「북어」에서는 꿈을 짓밟힌 소시민의 모습을, 김영재 시인의 「홍어」에서는 섞임의 미학을, 오종문 시인의 「숭어」에서는 미끼에 저당 잡힌 현대인의 처절하고 가련한 삶을, 박성민 시인의 「왕새우 소금구이」에서는 풍자와 해학의 미학을, 배우식 시인의 「연꽃우체통」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읽으며, 결국 시인의 발걸음은 어둡고 소외된 곳, 가난하고 절망적인 풍경 너머에 닿아 있음을 보았다.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들을 향한 연민의 시선이 때로는 해학으로, 때로는 풍자로, 때로는 역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고기를 소재로 취한 작품 속에서 우리는 바다 속이 아닌,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순과 조화를 찾아내고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 이송희
1976년 광주출생, 전남대 국문과 문학박사, 2003년 《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 2010년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제3회 오늘의시조시인상, 2010년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활성화 지원금 수혜, 시집 󰡔환절기의 판화󰡕, 󰡔아포리아 숲󰡕, 평론집 󰡔눈물로 읽는 사서함󰡕이 있음, 전남대와 조선대 국문과에서 강의 중, 〈21세기〉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