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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사각형의 세상에서 쌍봉낙타의 꿈을 꾸다

에세이향기 2023. 5. 31. 02:37

사각형의 세상에서 쌍봉낙타의 꿈을 꾸다

 

- 이지엽,『사각형에 대하여, 고요아침, 2011.

- 박성민,『쌍봉낙타의 꿈, 고요아침, 2011.

 

이 송 희

 

(시인,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1. 현대시조의 현실인식, 그 실험과 성취

 

  시인은 이 세계의 모순과 결핍을 진단하며 경고하는 ‘잠수함 속의 토끼’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비유와 상징, 알레고리의 방식으로 시대의 모순과 부조리, 물화된 욕망, 소외된 삶의 단면들을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우회적으로 표현하면서 독자와 소통하기를 원한다. 치열한 역사적 사건들이 즐비했던, 열망과 고뇌의 20세기에 시인들은 기꺼이 잠수함 가장 밑바닥에 들어가서 산소의 부족함을 경고하고 먼저 죽는 역할을 했다. 시인들이 현실에 대해 냉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려는 것은 곧 현실에서 삶의 진정성과 올곧은 가치를 찾으려는 하나의 전략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문학은 그 사회적 현실이나 역사적 상황에 대해 스스로를 구속하는 것이라는 샤르트르의 말처럼, 시인은 가면을 쓰고 시의 행간에 숨는 존재들이다.

  “현실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부끄럽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보다도 더 안타깝고 부끄러운 것은 이 뒤떨어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시인의 태도”라고 했던 김수영 시인의 말을 떠올리면, 진정한 시를 위해 얼마나 현실의 밑바닥을 들여다보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고도의 상징과 은유로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자의식의 세계를 더욱 견고하게 다져왔던 이지엽·박성민 시인의 작품에는 당면한 문제들을 깊이 고민하며 쓴 고뇌의 흔적이 역력히 배어 있다. 1982년 한국문학에 시 「촛불」이,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일어서는 바다」가 당선되어 이미 시 문단에서 일가를 이룬 이지엽 시인과 2002년 전남일보와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참신한 감각과 깊은 사유로 인정받고 있는 박성민 시인은 현실의 모순되고 뒤틀린 상황과 각박한 삶의 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민감하게 듣고 반응한다.

  이지엽 시인은 󰡔우리 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100권 시집을 완간하면서 일반 독자들에게 제대로 된 시조 텍스트를 널리 알리고, 한국 문학사에서 시조의 위상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목소리를 높여 왔다. 또 지리멸렬해가는 우리의 정신사에 새로운 미래시학이 시조가 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의식을 담고, 이후 시조의 위상 정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견했다. 1906년 7월 21일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대구여사(大邱女士)의 「혈죽가(血竹歌)」를 기준으로 하여 7월21일을 "시조의 날"로 제정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한편, 박성민 시인은 시대의 부조리함과 모순을 해학과 풍자로 그려내면서 독자적이고 개성 있는 시조미학을 구축하고 있다. 그늘지고 소외된 삶의 애잔한 표정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서정의 깊은 사유를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유년기의 삶과 가족사의 일면을 담아내며, 성장통의 한 줄기를 형상화하면서 등단 초기부터 많은 관심을 모아왔다. 이 글은 등단년도가 상이하지만, 2011년 8월이라는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두 시인의 작품을 읽으며, 현대시조가 추구하는 다양한 방식과 전통의 현대적 변용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2. 현란한 상상력의 변주, 그 두 가지 양상

 

  이지엽 시인의 시집 󰡔사각형에 대하여󰡕(고요아침, 2011)에서는 현란한 상상력으로 표출된 깊은 사유의 공간을 만날 수 있다. 그는 ‘구제역’과 같은 시사적인 것에서부터 직선과 곡선, 사각형처럼 추상적인 사유까지 구체적인 삶의 모순과 부조리함을 읽어낸다. 그리고 기독교와 불교를 비롯해서 다양한 종교적 사유, 사랑의 이미지에 대한 다양한 은유, 소소한 일상의 풍경들과 감동의 시간들을 담는다. 도형의 속성을 통해 현실을 모순과 부조리, 우리 삶의 각박한 내부를 묘사하고 있는, 사유의 마당으로 들어가 보자.

 

직선의 힘으로

남자는 일어서고

곡선의 힘으로

여자는 휘어진다

직선과 곡선이 만나

면이 되고 점이 된다

 

직선은 길을 바꾸고

지도를 바꾸지만

곡선은 그 길 위에

물 뿌리고 꽃을 피운다

서로가 만나지 않으면

길은 길이 아니다

                                     -  이지엽 「사랑 이미지1-직선과 곡선」 전문

 

  음양의 조화라는 삶의 속성을 직선과 곡선이라는 추상적인 이미지 속에서 이끌어 낸 시다. 직선을 남성성, 곡선을 여성성에 비유하며, 직선(남성) : 일어서다 + 곡선(여성) : 휘어지다 = 면, 점이 된다는 등식을 그려낸다. 이 등식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직선과 곡선이 대립되지만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이라는 점이다. 남성과 여성, 즉 음과 양의 조화로운 삶이 만들어내는 면과 점은 결국 우리가 사랑으로 일구어낸 가정이다. 가정은 사회를 형성하는 일차적인 공간이다. 남성성을 상징하는 직선은 길을 바꾸고 지도를 바꾸고, 여성을 상징하는 곡선은 남성이 바꿔 놓은 길 위에 물을 뿌리고 꽃을 피운다. 삶의 행로를 의미하는 길과 지도가 삶의 터전을 의미한다면, 물과 꽃은 삶의 양분과 그 양분을 먹고 자란 생명과 재생의 이미지일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세상의 모든 곡선은 직선을 함유하고 있다」라는 시를 통해 직선과 곡선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세상의 모든 곡선은 직선을 가지고 있지// 똑 바르게 자른 사고들이 경제의 길이라면 거꾸로 보고 비스듬하게 보는 것은 시의 길 그렇지만 둘은 한 몸이야”에서처럼 둘의 관계는 뫼비우스 띠와 같다는 것을 시사한다. 직선은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사고방식을 함축하고 있다면, 곡선은 감성적이고 우회적인 길을 통해 세상의 진실을 드러내는 예술적 사고방식을 함축한다. 시인은 이 두 가지 사고방식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180도로 비틀어 양쪽 끈을 맞붙이면 무한 순환의 길이 만들어지”는 뫼비우스의 띠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빛과 어둠, 삶과 죽음”, “둥근 것과 모난 것”, “같은 철길 위에도 터널이 있고”, “빗방울 속에도 피뢰침이 있”다고 노래한 「고난」이라는 작품에서 직선과 곡선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드러내며, 결국 삶과 죽음, 밝음과 어둠과 같은 대립되는 삶도 우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이야기한다. 직선과 곡선, 사각형과 같은 추상적인 이미지 속에서 사랑의 이미지를 발견하고, 「내가 사랑하는 여자」 연작을 통해 마늘이나 생강 같은 일상적 사물들을 여성의 이미지로 그려낸다. 이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다 안다는 것은 얼마나 모순인”(「역설」)지를 깨달으며, 생명과 사랑에 기대어 둥근 것을 지향하는 시 정신을 보여준다.

 

흙과 물이 만나 한 몸으로 빚어낸 몸

해와 달이 지나가고 별 구름에 새긴 세월

잘 닦인 낡은 그릇 하나 식탁 위에 놓여 있다

 

가슴에 불이 일던 시절인들 없었으랴

함부로 부딪혀 깨지지도 못한 채

숨 막혀 사려 안은 눈물, 붉은 기억 없었으랴

 

내가 너를 사랑함도 그릇 하나 갖는 일

무형으로 떠돌던 생각과 느낌들이

비로소 몸 가라앉혀 편안하게 잠이 들 듯

 

모난 것도 한때의 일 둥글게 낮아질 때

잘 익은 달 하나가 거울 속으로 들어오고

한 잔 물 비워낸 자리, 새 울음이 빛난다

                              - 이지엽 「그릇에 관한 명상」 전문

 

  그릇은 흙과 물이 만나 한 몸으로 빚어낸 존재이다. “해와 달이 지나가고 별 구름에” 새긴 세월 속에서 낡아가는 그릇을, 존재가 태어나 살아가는 방식에 비유하고 있다. 누구에겐들 열정에 불타던 젊은 시절이 없었을까. 오랜 세월 눈물을 참고 속으로만 삭인 채, 누구와도 부딪히지 않고 그대로 낡은 그릇을 보며 명상에 잠기는 시인.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너를 사랑함도 그릇 하나 갖는 일”이라는 것이다. 모나고 각이 진 것들에서 벗어나 곡선의 삶으로 향하면서 스스로를 낮추고 더욱 깊이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다. “책상과 TV와 칠판과 방과 집”(「사각형에 대하여」)과 같은 거대한 네모의 세계라는, 합리성에 의해 정형화되고 명료한 질서가 지배하는 세상에 갇혀 복종하며 살아왔던 지난날에서 벗어나 둥글게 낮아지면서 원으로 표상되는 순수한 정신, 삶의 역동성으로의 갈망을 희구한다. 그럼으로써, 달의 곡선이 깃드는 물속에서의 재생을 경험하고 싶은 것이다.

  “세모와 네모의 각이 진 말들을 다 버리고”(「입이 둥근 이유」) “부드러운 바람”, “둥근 아이 둥근 눈망울”과 같이 곡선으로 휘어지는 아늑하고 편안한 곳에서 한없이 둥글게 낮아지고 싶은 것이다. 생명의 근원지로 다시 회귀하며 세상이 둥글게 휘어진, “한 잔 물 비워낸 자리”에 새 울음으로 빛나기를 기원한다. 새 울음, 즉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지엽 시인이 보여주는 직선과 곡선, 세모와 네모의 사유 속에서 우리는 무수한 모서리에 부딪혀가며 깨달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지엽 시인이 사물을 통해 빚어내는 감각적 사유를 견지하면서, 인간 생명의 근본과 사랑의 정신을 이미지로 그려냈다면, 박성민 시인은 󰡔쌍봉낙타의 꿈󰡕(고요아침, 2011)에서 현실의 모순과 왜곡된 역사를 비판하고 풍자하거나, 소외되고 가난한 삶의 내부를 직시하여 그들의 삶에서 묻어나는 감동을 형상화한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 아프게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을 되새기며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으로 자아성찰을 하기도 한다. 그는 현실의 부조리함에 직접적인 대결을 시도하는 방식 보다는, 익살스럽게 풀어가거나 발랄한 상상력과 감각적인 문체로 풍자나 해학의 간접적 방식을 취함으로써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봄비에 비닐 뚫고 파릇파릇 돋았구나

 

마른 입술 뿌드득, 빛나는 이빨 물고

 

이렇게 살아 있음이 부끄러운 날 많았다

 

갈수록 가슴 알알이 깨지는 속병이여

 

독한 것, 눈물의 씨앗마저도 독한 것

 

깔수록 자꾸 눈물 나는 미안한 80년대여

                                            - 박성민 「마늘」 전문

 

  인간은 아팠던 과거일수록 오래 기억한다. 한 편의 시는 과거 이 자리에 아픔과 상처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흉터와 같다. 문학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여타 리얼리즘의 이론들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문학은 충분히 현실 참여적이다. 시대의 아픔과 고통, 지나간 역사에 대한 증언, 시대정신에 대한 고민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부딪쳐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1980년 5월 광주는 시인의 기억 속에 마늘의 독한 기운으로 또렷하게 남아 있다. 군사독재 시절, 무고한 시민과 학생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광주 금남로에서 쓰러져 갔던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알알이 깨짐을 고백한다. 시인은 지독한 속병을 앓으며 살아남은 날에 대한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그 아픈 과거를 우회적으로 그려내려 한다. “독한 것, 눈물의 씨앗마저도 독한” 독재정치의 폭압적 상황을 떠올리면서 자꾸 눈물이 나는 미안한 80년대를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떠나간 자들과 살아남은 자들을 동시에 위로하기 위한 반성이었으리라. “갈수록 가슴 알알이 깨지는 속병이여”와 “깔수록 자꾸 눈물 나는 미안한 80년대여”의 비슷한 구조를 둘째 수 초장과 종장에 반복적으로 배치시킴으로써 살아남아 부끄러운 날들에 대한 미안함과 괴로운 마음을 더욱 부각시킨다. 「금남로에서 묻다」를 비롯하여 80년 광주의 슬픔과 분노는, “안부도 묻기 전에 트럭에 가득 실려 금남로에 깃털 떨구고 사라져간 친구들”을 떠올리는 「이소룡처럼 울다」에서도 구체적으로 형상화된다.

  우리의 정치현실에 대한 풍자 외에도 그의 시는 비루한 현실을 우회적으로 고발하는 발칙한 상상력을 선보이기도 한다. 한편, 자신을 떼려고 한 통이나 간장을 마셨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쓴 「애기좀잠자리」 “옥상에서 낙상한 후/ 곡기를 끊으”시고, “낙타도 없는 사막을 물도 없이” 건너가신 할머니를 떠올리며 쓴 「할머니 생각」, “쥐덫 같은 세상에서 웅크림이 더 많았”던 아버지의 삶을 그린 「쥐의 눈은 캄캄하다」에서처럼 시인은 자신의 버거운 삶을 시의 행간에 내려놓기도 한다. 그리운 기억들에 사로잡혀 비틀거리며 아직도 세상에 섞이지 못하고 괴로워했던 심정을 고백한 「전봇대에서 듣다」에서도 사회가 낳은 부정적 이면들을 자신의 상처로 진단하여 자가 치유하려는 시인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 박성민 시의 미학은 사회적 아픔을 내면화하는 과정 속에서 고백적 방식으로 기억을 재구성함으로써 독자와 한층 더 가까워지는 방식으로 현실을 인식하게 하는 데 있을 것이다. 개인의 체험을 이야기하면서도 과도한 감정노출에 빠지지 않고, 지울 수 없는 상처의 기억을 구체적 이미지와 비유들로 끌고 가는 점에서 시인의 매력을 찾을 수 있다. 다음은 풍자와 해학이 돋보이는 시다.

 

  왕이시여, 피하소서. 당나라군이 성 안에…….

 

  놓아라, 이놈들아. 짐을 어디로 데려가느냐. 내 친히 갑옷 입고 눈알 부라리며 출정하면 드넓은 바다가 모두 왕국의 영토였느니, 쏘가리의 충언을 물리친 탓이로다. 고얀 놈들 감히 용포 위에 소금을 뿌리다니. 불판에 놓일지라도 난 눌어붙지 않을 테다. 死공명이 生중달을 쫒듯 끝끝내 네 놈들을.

 

  들어라! 너희 왕은 자결했다, 살고 싶거든 드러누워라.

                                                         - 박성민 「왕새우 소금구이」전문

 

  문학에서 만나는 해학과 풍자는 개인과 사회의 소소한 경험을 재미있게 풀어내며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 박성민 시인의 「왕새우 소금구이」는 풍자와 해학의 원리로 소금구이 요리의 과정과 역사의 한 장면을 결합하여 사설조로 구사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소금구이를 하는 요리의 한 과정과 백제의 멸망으로 추정되는 역사적 장면을 결합하면서 시인은 현대시조의 소재와 기법에서 새로운 융합을 시도한다. 구어체를 활용하여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이 작품은 단순한 재미의 차원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 인물을 재현하듯 직접화법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점에서 독자로 하여금 당대 상황에 대한 상상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또한 이 시는 각 장의 화자를 다른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작품 전반에 팽팽한 긴장감을 감돌게 한다.

  “왕이시여, 피하소서. 당나라군이 성 안에…….”라는 초장에서 당나라군이 성 안에 침입했음을 알리는 첫 수의 화자는 폐망해가는 백제의 장군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해상 대제국이었던 백제의 멸망기가 아닐까 짐작한다. 전성기 때에 중국의 요서와 산동 지방, 왜 등을 지배했던 해상제국 백제는 이 시에서 “내 친히 갑옷 입고 눈알 부라리며 출정하면 드넓은 바다가 모두 왕국의 영토였느니”로 표현된다. 따라서 둘째 수의 화자는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으로 추정된다. 왕새우에 소금을 뿌리고 불판에 얹는 장면을 의자왕의 최후의 모습으로 은유하는 중장의 이 장면은 단순한 웃음만을 유발하지 않는다. ‘해동증자’라 불리며 성군 소리를 들었고, 멸망하기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신라를 공격해 30여 성을 빼앗았다는 기록이 전할 만큼 강한 군주의 모습을 보인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의 침입을 받고 무기력하게 무너져가는 현장을 재현한다.

  당나라 장군을 화자로 한 종장 “들어라! 너희 왕은 자결했다, 살고 싶거든 드러누워라.”는 패망한 백제의 군사들과 백성에게 항복을 강요하는 외침이다. 당나라군들은 살고 싶다고 항복하는 백성을 온전히 살려두지 않는다. 드러눕는 즉시 죽이거나 노예를 만드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준 교훈이다. 따라서 이 말은 당나라 장군이 백제군과 백성을 기만하는 말이다. 사건이나 상황의 부조화에서 비롯되는 상황적 아이러니가 잘 드러난다.

  이 작품은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 속에서 강자에 의해 지배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은밀히 비판한다. 무너진 나라의 왕을 끌고 억지로 불판에 놓는 이 장면은 마치 강자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힘없고 빈곤한 민중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와 질서 체계를 표상하는 “불판”에 놓일지라도 눌러 붙지 않겠다는 기개와 자존심을 보여준다. 풍자와 해학으로 이끌어내는 박성민 시인의 매력은 2010년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에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했던 현장을 그린 「이순신 입원하다」나 신춘문예 심사평의 특징을 해학과 풍자로 그려낸 「신춘 심사평」 등의 여러 작품에서 자연스러운 말 부림의 매력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