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수필

토굴 /김은주

에세이향기 2024. 4. 28. 06:50
토굴 /김은주 








 글을 재우려고 방문을 닫는다. 자꾸만 들떠 달아나는 글을 잡고 뉘여 토닥토닥 등을 두드린다. 이불도 끌어당겨 덮어 보고 흥얼거리며 자장가도 불러 본다. 겨드랑이 아래 끼고 누워 충분히 숨길도 열어주고 그래도 뒤척이면 머리까지 쓰다듬어 준다. 스르르 눈 감을 때까지, 달디 단 잠 속에 들 때까지 오래 글을 어르고 달랜다. 처음부터 재우려는 생각은 없었다. 행간을 넘나들며 혼자 잘 놀 때는 그러려니 하고 두고 보지만 걸려 넘어지고 징징거리기 시작하면 그때는 푹 재우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문턱에 걸리고 툴툴거리는 글을 어찌 그냥 두고 보겠는가? 쓰는 자는 툴툴거림의 이유라도 알지만 읽는 자에게 그것은 독서의 물길을 막는 일이니 말이다. 접시꽃 흐드러진 칠월의 뙤약볕이 방까지 도달하기에는 나만의 굴은 너무 견고하고 조용하다. 밖은 칠월이고 방안은 캄캄한 낮이다.

 

캄캄한 낮을 양식 삼아 생각의 꼬리를 풀어본다. 여우 꼬리도 아닌 것이 제법 변덕스럽다. 어느 산에 가든지 백련암 한 채는 꼭 있듯이 내 마음에도 허름한 토굴 한 채 없는 듯 숨어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는 알 길 없으나 꽃 피고 눈 내리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내 호흡을 세고 있다. 산에 피는 꽃이 저만치 홀로 피어나듯 사람도 저마다 혼자 살아간다. 더불어 이루어야 하는 일도 있지만, 혼자일 때 더 큰 세상과 만나는 경우가 많다. 캄캄한 방안에서 때로는 광맥을 만나기도 하고 가끔은 막막한 절벽 앞에서 힘들어하기도 한다. 쓸 때의 고통보다 쓰지 못할 때 고통이 늘 더 무겁다. 마당 밖에는 칸나 붉은 등 내걸고 방안에는 작은 빛조차도 마다한 채 그저 푹신한 어둠과 마주 앉았다. 마음이 가는 대로 생각도 따라 움직인다.

 

오가는 생각의 길목에서 오마지 않은 이를 기다려 본 자는 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글을 목 빼고 기다려보면 일순 허기지고 쓸쓸해진다. 한나절이면 고개 넘어 산딸기 수북한 골에 들 수 있는데 가지도 아니하고 빗장 풀고 기다리는 꼴이다. 글 등을 두드리던 손길에도 풀기가 빠지고 하마나 오려나. 기다려 보지만 허사다. 이쯤 되면 기다리기보다는 움직여야 한다. 허기를 달래려면 우선 백지와 자결할 각오로 마주 앉아야 한다. 캄캄한 백지 위에서 산을 오르고 고개를 넘어야 산딸기를 만날 수 있다. 만났다 하여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다시 덤불을 헤치고 가시에 손등을 내어줘야만 한 움큼 산딸기를 얻을 수 있다. 시큼한 맛에 허기를 면하고 나면 그때 비로소 내려갈 길도 보인다. 오를 때 보이지 않던 길로 산을 내려오며 답답한 글쓰기의 뒷맛을 즐기는 것이다.

 

산딸기의 맛을 제대로 알아채기 위해서는 토굴에 들기 전 이미 산을 여러 차례 다녀와야 한다. 캄캄한 방안에서도 숲과 능선의 위치를 알아야 하고 무슨 새가 우는지 올라갈 길과 내려올 길을 선명히 꿰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계곡을 두 굽이 돌아가면 오른쪽 언덕 위에 딸기 밭이 있다. 딸기 밭은 서로 붉은 가지를 부둥켜안고 엉켜있다. 그 사이로 조심스레 손을 넣어 산딸기를 따 보면 시간을 잃어버리는 재미가 있다. 따고, 모으고, 맛을 볼 때까지 여름 숲은 내내 맑지도 않다. 가끔 천둥과 소나기도 지나가고 뭇 생명이 치열한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다. 초록이 짙어지면 검정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여름 숲에 와 깨닫는다.

 

아무리 절절히 깨달았다 해도 생각의 날개가 저절로 펴질 리 만무하다. 숲과 천둥, 계곡의 물소리도 함께 데리고 와야 활짝 펴진다. 먼저 눈으로 들어온 풍경이 마음 안에 쌓이고 쌓인 대로 생각하게 되고 생각한 대로 쓰게 된다. 우선 눈이 열려 세상을 읽고 읽은 마음이 감동할 때 캄캄한 백지 위에 글이 쏟아진다. 물 흐르는 것 같은 이 과정이 한곳만 어긋나도 글은 금방 삐걱거린다. 밥 먹고 세수하듯이 글이 생산된다면 무엇이 걱정일까. 맹물 같은 마음으로는 한나절을 앉아 있어도 단 한 줄도 얻기 어렵다. 애꿎은 뒷목만 당기지 부드러운 문장 하나 건질 수 없다. 글을 청한 사람은 독촉 인사가 잦고 마음은 늘 단두대처럼 서슬 퍼렇게 나를 기다린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기다리는 수밖에.

 

 다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잠시 글 길이 막히면 나는 글을 재우고 함께 쉰다. 더러 일상의 버거운 일을 해가며 글이 자고 일어나기를 무심히 기다리기도 한다. 깝치거나 서두르지 않아도 잘 만큼 자면 일어나게 되어있다. 숙면의 효과는 다양하고 차진 문장으로 나타난다. 다른 일에는 턱없이 까다로워도 글이 자는 잠에 대해서는 참으로 관대한 편이다. 글 잠이 들면 세상 밖 일은 까맣게 잊어버린다. 해가 지는지, 바람이 부는지, 오로지 토굴의 어둠과 대면할 뿐이다. 캄캄한 방에 지는 저녁 해가 스민다. 슬쩍 스민 빛 사이로 딩동 문자 알람이 뜬다

 

 "어찌 지내시누. 토굴은 다 팠는지. 여직 굴속이요."​

 

 기척 없어 궁금했던 지인이 기별을 넣는다. 그 소리에 글도, 나도 꿈들 깨어난다. 어둡던 토굴이 일순 환해지며 흩어진 글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단잠에서 깬 글은 눈 비비며 토굴을 빠져나와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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