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을(1964∼ )
근엄하신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는
날마다 가마솥에 욕을 끓인다
가마솥 절절 끓을수록 욕설이 구수하다
손님 탁자마다 돌아다니면서 욕으로 안부를 건넨다
할머니 욕해주세요∼
저, 염병할 놈, 또 왔네 아직도 그 타령이여?
욕설을 얹어야 국밥이 맛있다
국밥을 비우면 국밥 그릇에
조금쯤의 반성이 남는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내일이
아이고, 이 배라먹을 놈아
염병할 놈! 쯧쯧, 저 재수 없는 놈을 어쩐댜―
불쌍시런 놈아 잘 처먹고 잘 살으랬지?
옜다, 이놈아 국밥이나 잘 처먹어라―
칼보다 펜보다 강한 할머니의 욕을
가슴에 새긴다
나를 때리는 욕을 목구멍에 삼킨다
들을수록 통증이 오지만 통증이 멈추면
새살이 올라오는,
오늘도 욕 먹으러 국밥집에 간다
욕은 욕먹는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듣는 사람에게 불쾌한 자극을 준다. 그런데 욕쟁이 할머니가 꾸리는 이 국밥집에는 단골이 많은 듯하다. 그들은 마조히스트인가? 왜 욕을 들으며 밥을 먹을까? 할머니의 욕이 비속어이기는 하지만 악의가 있는 게 아니라 정이 뚝뚝 흐르기 때문이다. ‘저, 염병할 놈, 또 왔네 아직도 그 타령이여?’ ‘쯧쯧, 저, 재수 없는 놈을 어쩐댜’ ‘불쌍시런 놈아 잘 처먹고 잘 살으랬지?’ 할머니의 욕에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배어 있다. 하는 일마다 재수도 참 없는, 사는 게 늘 그 타령인, ‘불쌍시런 놈’들은 친할머니 같은 할머니의 욕을 듣고 펄펄 끓는 국밥을 먹으며 속이 확 풀리고 배가 든든해진다.
영화 ‘황산벌’에서 백제군과 신라군이 욕 대결을 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어쩜 그렇게 기상천외한 욕들을 ‘차지게’ 쏟아내던지 포복절도했었다. 세계 모든 욕에는 성(性)과 관련된 게 흔한데, ‘황산벌’ 욕의 성찬에는 그게 없었다. 그래서 관객은 모욕감을 느끼지 않고 시원스레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욕은 웃음을 주는 해학이기도 하다. 욕도 창의적으로 하면 좋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