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밑에서 말발굽소리가 난다 / 손택수
구두 밑에서 따그락 따그락 말발굽소리가 난다
구두를 벗어보니 구두 뒷굽에 구멍이 났다
닳을 대로 닳은 구두 뒷굽을
뚫고들어간 돌멩이들이 부딪치며
걸을 때마다 창피한 소리를 낸다
바꿔야지, 바꿔야지 작심하고 다닌 게 몇달
할 수 없다, 할 수 없다 체념하고 다닌 게 또 몇달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광주로
마산으로, 다시 부산으로 떠돌아다니는 동안
빗물이 꾸역꾸역 밀려들어오던 구두
빙판길에선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엄지발가락에 꾸욱 힘을 줘야 했던 구두
걸을 때마다 말발굽소리를 낸다
빼고 나면 다시 들어가 박히고
빼고 나면 또다시 들어가 박히는 소리
따그락 따그락 지친 걸음에 박자를 맞춰주는 소리
닳고 닳은 발굽으로 열 정거장 스무 정거장
빈 주머니에 빈손을 감추고 걸어가는 동안
그만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이럇, 뒷굽을 치며 갈기를 휘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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