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 이길옥
아랫목에 앉아 발을 뻗으면
한 뼘 자투리가 남는 윗목까지의 거리
그 비좁은 오두막에도 봄볕이 기웃거립니다.
한 번도 떳떳하게 허리 펴보지 못하고
한 번도 자신 있게 앞서보지 못하신 아버지
고된 피곤을 어머니 치마폭에 털어놓고
목에 걸리는 한숨으로 방안을 채웁니다.
방을 채운 한숨이 봄볕에 버무려지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도 자식들은 불평을 깔고 앉아
곱고 탐스런 꽃으로 벌 나비를 불러 모읍니다.
더 작다고 샘내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더 적다고 강짜 놓거나 기죽지 않습니다.
살 비비고 숨결 합치면서 기대어 삽니다.
아버지의 지친 몸을 받쳐주고
어머니의 아린 속에서 아픔을 건져냅니다.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이엉을 이고 힘 겨워하는
토담집 낡은 문턱을 봄볕이 걸터앉아
방안의 칙칙한 어둠을 몰아내고 있습니다.
가족이 환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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