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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납작한 바다 / 정상미

에세이향기 2023. 11. 11. 14:36

납작한 바다 / 정상미


   바다는 가볍게 구워져 입안에서 부서져요
   도토리묵 위에서 흩어지기도 하죠

   한때 갯바위가 되고 싶었던 나는 파도의 음률을 사랑했어요 돌에 뿌리내리고 자란 가느다란 몸을 선호했지요 촘촘하게 펼쳐 놓은 하루를 말려 수평선을 당겨오면 시간의 껍질처럼 포개진 초록 잎사귀들 곡선밖에 모르는 춤으로 출렁이다가 온몸으로 바다를 받아적어요 듬성듬성한 연초록 사이 따개비 놀래미를 보여주기도 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소리를 버리고 슬픔이란 슬픔 죄다 흡입해서 갯내를 뿌려요

   매운 연애의 비렁길을 돌아 심해에 묻어둔 스물세 살의 무거운 말들이 달려 나와요 손끝에서 미끄러지는 기억들 , 얇은 바다를 깔고 밥과 감정을 넣어 돌돌 말아요

   당신도 결국엔 납작해졌고

   지금은 습기를 버린 얇은 이별의 바다 한 장

   길고 동그란 바다를 하나씩 잘라 내가 했던 말들을 혀에 대고 굴려 보면 이제 좀 바삭거릴까 철썩철썩 짭조름한 몸에서 배어 나오는

   또 다른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