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더..
낙타를 무릎 끓게 하는 마지막 한 짐
거목을 쓰러뜨리는 마지막 한 도끼
사람을 식게 하는 마지막 한 눈빛
허구한 목숨을 거둬가는 마지막 한 숨
끝내 안 보일 때까지 본 일 또 보고
끝을 볼 때까지 한 일 또 하고
거기까지 한 걸음 더
몰리니까 한 걸음 더
댐을 무너뜨리는 마지막 한 줄의 금
장군!을 부르는 마지막 한 수
시대를 마감하는 마지막 한 방울의 피
이야기를 끝내는 마지막 한 문장
알았다면 다시 할 수 없는 일
알았다 해도 다시 할 수 밖에 없는 일
거기까지 한 걸음 더
모르니까 한 걸음 더
..세상의 등뼈..
누군가는 내게 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어께를 대주고
대준다는 것,그것은
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
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
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준다는 것
혈혈단신 땅에 묻힌 너의 뿌리 끝을 일깨우며
배를 대고 내려 앉아 너를 기다려준다는 것
논에 물을 대주듯
상처에 눈물을 대주듯
끝 모를 바닥에 밑을 대주듯
한 생을 뿌리고 거두어
벌린 입에
거룩한 밥이 되어준다는 것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춤..
내 숨은
쉼이나 빔에 머뭅니다
섬과 둠에 낸 한 짬의 보름이고
가끔과 어쩜에 낸 한 짬의 그믐입니다
그래야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내 맘은
뺨이나 품에 머뭅니다
님과 남과 놈에 깃든 한 뼘의 감금이고
요람과 바람과 범람에 깃든
한 뼘의 채움입니다
그래야 점이고 섬이고 움입니다
꿈만 같은 잠의
흠과 틈에 든 웃음이고
짐과 담과 금에서 멈춘 울음입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두 입술이 맞부딪쳐 머금는 숨이
땀이고 힘이고 참이고
춤만 같은 삶의
몸부림이나 안간힘이라는 겁니다
.늘 몸..
늘 몸에 허공을 품고 사는
일급 도공의 손엔 지문이 없고
일급 바이올리니스트 손끝엔 줄 골이 깊다지
눌 몸에 광야를 품고 사는
일급 축구선수 발엔 발톱이 없고
일급 발레리나 발가락은 생강뿌리 같다지
늘 몸에 바람을 품고 사는
일급 카사노바의 입술엔 젖과 꿀이 흐른다는데
반 평생 고개를 쳐밖고 읽고 또 쓰다가
책상이라도 뚫을 세라 또 늘어진
닷 발의 내 두 빰도 일급이라면 일급?
늘은 전부다
굳은살로 고이는 전부다
시간의 거푸집으로 찍어낸 버릇 든 몸이다
삶을 완성하는 무작정이다
..삶은 소금처럼 그대 앞에 하얗게 쌓인다..
늙는다는 것은 작아진다는 것이고
마른다는 것이고 비운다는 것이다
덤덤해진다는 것이고
담담해진다는 것이다
몸소 검소 감소 축소 청소하지 않으면
늙음은 시간의 소굴이 되기 십상이다
작아진 몸을 눕힐 주소 하나
낮아진 몸을 의지할 지팡이 하나
굼뜬 몸을 일으켜 세워줄 마음 하나
그리고 주먹만한 위를 채워줄 밥 한 그릇으로
압축되는 이 한 삶이 서늘하다
사랑이든 욕망이든 일상이든
낮고 작고 가벼워져야
크고 넓은 곳으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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