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의 내부 - 동행 / 박성민
절름발이 여자가
벙어리 사내에게
눈빛으로 손가락으로 말들을 꿰매고 있다
아파트 모서리에 놓인 초원 구두 수선집
사내는 구두를 받자
닳은 뒷굽을 떼어낸다
초원 끝에서 들려오는 말갈족의 말굽소리
사내는 구름 속에 들어가 지평선을 깁고 있다
벙어리의 저린 가슴을
헤집고 나온 말의 뿌리
한 번도 사랑한단 말, 못 해주고 살아온
사내의 착한 눈망울은 디딜 곳 없는 허공이다
못처럼 박혀드는 널
남겨두곤 죽을 수 없다
마른 입술 축이는 사내의 눈이 들어가는
구두의 닳아진 내부는 저녁처럼 어두워진다
한 평 반의 수선점은
낡고도 비좁은데
어둠이 막 깔리기 시작하는 저녁하늘에
사내는 성긴 별들을 총총히 박아 놓는다
시집 『쌍봉낙타의 꿈』(고요아침, 2011) 중에서
이승하 시인의 해설을 본다
구두 수선공 부부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남편은 벙어리이고 아내는 절름발이다. 시인의 상상력은 의좋은 부부의 일터에서 초원의 끝에서 들려오는 (구두 수선점의 이름이 ‘초원’인 모양이다) 말갈족의 말굽소리로 뻗어간다. 눈빛과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구두의 닳은 내부는 저녁처럼 어둡다. 사내는 어두워가는 저녁하늘에 성긴 별들을 총총히 박아놓는다. 구두의 내부는 생활이요 성긴 별은 희망이다. 이들의 삶이야 고달프기 짝이 없지만 서로 사랑하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으니 밤이 와도 완전한 어둠에 휩싸이지 않는다. 구두에 박는 못을 “저녁하늘에/사내는 성긴 별들을 총총히 박아 놓는다”로 표현한 결구는 이 시의 미학을 극적으로 완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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