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집 / 윤계순
어떤 말끝에
실비집이라는 말이 튀어나와
인터넷 검색을 하니, 그곳에 아버지가
참 난처하게 앉아 내리는 실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실비, 곤궁한 주머니 사정을 곤궁한
값으로 쳐서 받겠다는 뜻 같은데
나는 왜 실비집을 가늘게 내리는
그 실비로 생각했을까
실비, 노천의 막일에 이처럼 어정쩡한 판단이 또 있을까
일을 하자니 자재資材들이 젖고
말자니 한 겹 주머니가 젖을 터
그 두 가지 사정엔 미루어지는 공기工期와
공치는 일당이 있다
허름한 일진日辰이 축축해져,
실비 오는 듯 집을 나섰는데
덕지덕지 바른 신문지 벽에 등을 기댄
양철 지붕 처마 끝, 흘러내리는 빗소리에
서둘러 천막 덮어놓고
홑겹 사정들도 꾹꾹 덮어놓고
이 핑계 저 핑계가 아니라
모처럼 한 핑계로 둘러앉는 실비집,
실비는 계속 내리고 노래들은 점점 삐뚤어지고
찌그러진 양은 잔에도 콸콸 부어지는
얼큰한 체념들, 희미하게 비틀거리는
전봇대 사이를 지나면서도 목청 높게
더 높게 하늘처럼 높은 이름들을 부르는 아버지들
이젠 두둑하게 제 밥벌이 자식들
모두 떠나보내고도 밑진 값으로 넘어가는
아버지의 하루가 실비 내리듯
새어나가고 있는 왁자지껄한 실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