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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등대바라기 / 변재영

에세이향기 2024. 7. 24. 03:11

 

등대바라기 / 변재영


 등대는 기다림이다. “철썩철썩 쏴아아~” 발밑에 초록빛 바다가 출렁인다. 내 유년의 아픔이 섬처럼 동동 떠있는 고향 바다, 그리움이 입맛을 당기듯 짭조름한 갯내가 후각을 파고든다. 쪽빛 바다에 갈맷빛 하늘, 기다림의 상징인 빨간 등대, 맴돌이치는 갈매기들의 군무, 갯바위를 훑는 파도의 몸짓까지 아버지의 짧은 생이 웅크린 낯익은 바다가 아니던가.
 보물섬 남해 끝자락, 일명 몰갯넘이 내 고향이다. 모래톱에 일군 동네라 붙여진 이름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작은 어촌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면청을 비롯하여 현대식 건물이 숲을 이루고 있다. 물매진 언덕을 오른다. 밤새 혼신의 힘으로 타올랐던 등대가 쉬고 있다. 철망 같은 섬에 갇혀 뭍을 향해 훨훨 날고 싶었던 까까머리 소년을 기억할까. 문득 코흘리개 적 향수가 내 아픈 기억을 불러낸다.
 내가 어릴 때 근육질 단단한 아버지는 거룻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 맨손으로도 힘 좋은 숭어를 턱턱 잡아 올렸다. 만선을 기다리는 가족의 마음을 읽었을까. 아버지는 늘 만선의 깃발을 높이 내걸고 개선장군처럼 돌아왔다. 신이 난 우리 가족들은 살아 펄떡이는 물고기와 함께 웃었다. 피는 속이지 못하는 법. 고기잡이가 좋았던 나는 출항 때마다 아버지보다 먼저 배에 올랐다. 하지만 번번이 쫓겨났다. 언젠가는 가라앉아야할 배의 운명을 아버지는 일찍 예감하고 계셨으리라.
 축 처진 어깨를 곧추 세우는데 자식만한 게 또 있을까. 조업을 나나지 못하는 날이면 아버지는 나를 목마에 태우고 등대로 향했다. 그곳에서 등대지기가 되어 고기잡이 동요를 흥얼거리며 시간의 빈틈을 메웠다. 내게 아버지는 든든하고 자애로운 등대였다. 나는 늘 행복의 세레나데를 불렀고, 그 사랑의 멜로디가 끝나지 않는 파도 소리처럼 오래오래 내 곁에 머물러주기를 바랐다.
 몇 년에 한 번씩은 허기진 바다였다. 온화한 모성은 평온으로 가장한 바다의 위선일 뿐, 짐승처럼 포효하는 아가리에 모든 것을 제물로 바쳐야 했다. 매지구름에 포위된 바다가 갑자기 그르렁거렸다. 바람의 억센 손아귀에 휘감긴 파도가 바다를 덮치는 건 순간이다. 불빛을 잃은 등대가 “뿌우~ 뿌우~” 무적을 울렸지만 배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집채 같은 너울이 수평선에 떠있는 배를 산위에 올려놓던 그날, 아버지와 배는 속절없이 주저앉았다. 바다는 두발로 서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기대는 것이라고 했던가. 육지보다 바다가 더 편하다고 하시던 아버지는 그렇게 한줌의 흙이 되어 바다로 돌아갔다. 이팔청춘 호시절도 누려보지 못한 아버지, 순대 속처럼 구불구불한 바닷길은 굴곡진 당신 인생길의 아픈 시간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바다가 보기 싫다며 문을 닫아걸었다. 그러기를 반년, 겨우 몸을 추스른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등대에 올랐다. 손에는 뭍에 입원할 친구에게 전할 의복이라며 작은 옷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구멍가게에서 눈깔사탕도 한 봉지 사고, 내가 좋아하는 단팥방도 샀다. 등대 그늘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아버지를 빼앗아간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날은 어린 양처럼 순했다. 나는 달콤한 빵을 맛나게 먹었지만 어머니는 구경만 할분 눈깔사탕 하나 입에 대지 않았다. 입꼬리는 웃고 있었지만 슬픈 눈망울은 어딘가 불안했다.
 어머니가 나를 꼭 껴않았다.
 “영아, 사탕 먹고 잠깐만 기다릴래? 엄마가 선착장에 가서 친구에게 옷 보따리 전하고 올게”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연락선이 둔중한 뱃고동을 울리고는 항구를 빠져나갔다. 나는 어머니의 친구분이 타고 있을 그 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나 남은 사탕을 다 먹어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소식이 없었다.
 가진 것 없이 어둠 속에 내쳐진 스물 중반의 미망인, 중심을 잡지 못하고 표류하던 어머니는 그렇게 희미한 불빛을 찾아 불나방이 되어 날아갔다. “서방 잡아먹은 년”이라는 할머니의 비수 같은 폭언도 한몫했으리라. 기왕 떠날 바엔 야반도주라도 할 일이지 왜 나를 등대까지 데리고 갔을까. 나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겉으로는 분노했다. 원망하고 미워도 했지만 속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리웠다. 아니, 사랑했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세상이 무너진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나는 불 꺼진 등대였다. 나를 향해 반짝이는 불빛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재, 홀연히 떠나버린 어머니의 충격까지 대여섯 살 꼬마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웠다. 나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조각배처럼 흔들거렸다.
 그리움은 기다림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눈만 뜨면 등대바라기가 되어 엄마를 기다렸다. 인생은 기다림이라고 했던가. 고기잡이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던 그곳에서 다시 집나간 엄마를 기다려야하는 내 운명이 한심하여 자꾸 눈물이 났다. 귀를 등탑에 걸어놓고 낯익은 목소리를 쫓다보면 섣달그믐의 눈썹달이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바다를 훑어온 칼바람이 등짝을 할퀴어도 쉽게 기다림의 끈을 놓을 수 가 없었다. 돌아오기 위해 떠난 배는 다시 왔지만 어머니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이놈아 거긴 왜 가는 겨, 기다린다고 떠난 어미가 돌아 오냐.”
 할머니가 망부석이 된 나를 걱정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뒷산에 두어 번 꽃물이 든 후에 나는 할머니에게  다시 물었다.
 “할머니, 엄마 어디 있어요?“
 “네 어미는 죽은 겨, 다시는 찾지 말거라”
 그때까지도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절절한 노기가 묻어났다.
 세상이 싫고 사람이 싫었다. 엄마 없이 자는 법을 너무 일찍 배워버린 내가 기댈 곳은 등대뿐이었다. 언제나 아버지처럼 우뚝 서서 나를 기다리는 등대, 설움이 복받칠 때마다 그곳을 찾았다. 등대에 기대어 실컷 울고 나면 조금은 가슴이 후련해졌다.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이는 내게 등대가 속삭였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야, 눈앞의 높은 산도 혼자 넘어야할 몫이란다.” 그것은 곧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비록 아버지는 떠났지만 내 가슴에 지펴놓은 등댓불까지 꺼진 건 아니었다. 등대에는 아버지의 따뜻한 온기가 녹아있었다.
 빛을 잃어가는 할머니의 등대가 불안했다. 언젠가는 내가 할머니의 등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했다. 한 조각 슬픔까지 툭툭 털고 일어선 나는 등대가 일러준 대로 푸른 해원을 향해 원대한 꿈을 키웠다.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등대의 천성을 닮으려고 노력하면서……. 고립이 주는 성찰의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환경이 사람을 지배하는 법. 굴곡을 거부하는 등대로부터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몸의 언어를 먼저 배운 나는 일찍 철이 들어 어른 아이가 되어 갔다.
 해상의 길잡이로 선박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광탑, 아가페적인 사랑의 메신저가 등대의 속살이다. 도시인들에게는 낭만의 음표로, 비손 앞에서는 탑이 되기도 한다. 나래를 접는 물새들에게는 간이역이요, 인생의 지표를 잃고 방황하는 이들에게는 희망과 용기를 주는 구원의 천사가 되기도 한다. 어린 몸으로 절해고도에서 허우적대던 내게 등대는 어떤 존재였을까. 절대고독의 상징으로 영혼의 불빛이었을지도 모른다. 고통도 시간에 풍화되는 것일까. 지금은 내 삶의 고해에 고운 꽃무늬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궤적을 긋는다. 한 모숨 햇살 같았던 아버지의 등댓불이 그립다.
 2010년으로 기억된다.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가 한창이던 중추절이었다. 뜬금없는 전화 한통을 받았다.
 “오빠, 엄마를 모시고 있는 동생입니다. 염치없지만 생전에 한번쯤은 꼭 만나봐야 할 것 같아서…….”
혈혈단신인 내게 오빠라니, 사실 어머니가 살아계셨다. 무언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머릿속이 멍해졌다. 어머니는 재혼해서 남매를 뒀는데, 지금은 홀로되어 이혼한 딸과 함께 멀리 강원도 속초에 살고 계셨다. 임대아파트에 산다는 걸 보면 넉넉한 형편은 아닌 듯했다. 기왕에 고친 팔자라면 잘 살았으면 좋으련만……. 당신이 버리고 간 아들을 어떻게 만나느냐고 손사래를 쳤지만 딸이 몰래 전화를 했단다. 엄마 가슴에 뭉쳐있는 응어리를 풀어줄 사람은 오빠밖에 없다고 말이다.
 분꽃같이 곱던 어머니를 호호백발이 되어 마주했다. 기다림에 지쳐 한줌 눈물마저 말라버린 것일까. 서먹서먹하기만 할뿐, 부둥켜안고 펑펑 울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다. 어머니라는 소리는 더더욱 나오지 않았다. 모진 진통으로 나를 분만하고 어린 입술에 젖을 물려 배불리 먹였겠지만 기억이 없었다. 반백을 훌쩍 넘긴 해후지만 떠나간 이웃 안부 묻듯 모자 상봉은 그렇게 끝이 났다.
 두어해 뒤다.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연락이 왔다. 환자복속에 얼비친 어머니의 몸은 검불처럼 말라 있었다. 수술을 했지만 노환이 겹쳐 결과는 좋지 않았다. 임종을 예견 했을까.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너에겐 뭐라고 할 말이 없구나.”
 어린 아들을 떼어놓고 가야 했던 당신의 입장을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그냥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순간 가슴속에 있던 뜨거운 덩어리가 식도를 타고 빠르게 올라왔다.
 “어머니!”
 내 입에서 머뭇거리던 단어가 익숙하게 튀어나왔다. 나도 몰래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살 냄새인지 소독약 냄새인지 퀴퀴한 냄새가 났다. 아니 어머니의 젖 냄새가 났다. 마른 가슴이지만 고향처럼 아늑했다. “어머니!” 이 한마디로 충분했을까.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감은 눈을 다시는 뜨지 않았다. 내 오랜 기다림의 등대가 불빛을 접는 순간이었다.
 어느 듯 내게도 인생의 겨울이 발목을 적신다. 그래서일까. 오늘처럼 고향 등대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어둠이 숙성되는 시간, 밤바다를 향해 등대가 불빛을 뻗는다. 묵혀두었던 깊은 그리움이 전신을 휘감는다. 아버지의 화신인양 내 가슴에도 등댓불 하나 환하게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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