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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바가지 / 강여울

에세이향기 2024. 7. 26. 03:28

 

바가지 / 강여울 




 


눈비가 번갈아 다녀간 뒤라선지 주유소 세차장에 차들이 줄을 섰다. 기름을 넣고 차례를 기다리며 자동세차터널로 들어가는 차를 바라본다. 얼룩 먼지를 뒤집어 쓴 차들이 터널을 통과하면 말갛게 세수를 한 아이처럼 나온다. 내 앞 차의 뒤를 이어 세차터널 입구로 들어선다. 세차터널은 차가 시동을 끄고 수동적 자세를 취해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상생활에서 씻기는 모든 것들은 ‘나 죽었소’ 하고 몸을 맡기는 법이다. 물을 뿌리고 걸레질을 하며 차가 씻기는 동안, 나는 비오는 골방에 앉은 듯 고요히 생각에 잠긴다. 정신없이 달려온 내 삶이 빠른 영상으로 지나간다. 세차기는 바람으로 물기를 쓸어내리고 목욕한 아이의 엉덩이를 두드리듯 나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낸다. 들어 갈 때와는 달리 깨끗해진 차 유리는 상대적으로 더러운 안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진공청소기에 동전을 넣어 차 안의 먼지를 털어내고 걸레질도 한다. 그대로 가면 남편이 속사포로 지청구를 쏘아대며 바가지를 긁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바가지가 마치 여자의 전유물인양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다. 어디든 예외는 있는 법, 나의 집에서 바가지를 손에 쥐고 자유자재로 긁고 연주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남편이다. 남편은 몸의 움직임보다도 말이 부지런한 사람이다. 말로 궁전을 짓는다면 진시황의 황궁에 버금가는 궁전을 짓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유감스럽게도 남편은 자신이 긁는 바가지 소리가 얼마나 듣기 싫은 공해인지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쉬지 않고 바가지를 긁으면서 자신의 바가지 연주에 빠져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감상법은 포기한 지 오래다. 어쩌다 내가 꼭 맞는 말 몇 마디를 하면 남편은 마치 자신의 특권을 내가 빼앗기라도 한 것처럼 꼬리를 셀 수도 없이 달아 기가 질리게 한다. 이런 일상이 사반세기 가깝다보니 외부적으로 보면 나는 기를 못 펴고 사는 멍청이 같다. 가끔씩 인심 쓰듯 천사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하지만 그 말 역시 ‘어리석기는.......’ 하는 속말을 숨기고 있다.  <!--[endif]--> 
바른 말, 좋은 말만 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나로서는 남편의 거칠고 직설적인 많은 말들 때문에 늘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어떻게라도 소화를 시키기 위해 남편의 말을 속에 넣고 잘 씹었다. 꼭꼭 잘 씹을수록 남편의 말은 더 거칠고 질겨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하고는 남편의 말을 되도록이면 대충 우물거려 삼키게 되었다. 묘하게도 대강 씹어 삼킨 쓰고, 떫고, 가시 박힌 말들이 나의 소화능력을 향상시켰다.


요즘 들어 자칭 전업주부라는 말을 자주 하는 남편은 삼 년 전까지만 해도 잔소리는 할지언정 집안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안팎으로 혼자서 모든 일을 해야 했던 나는 날마다가 스트레스였다. 겉으로는 왕성한 소화력을 지닌 것 같아도 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건강검진을 하며 위내시경으로 들여다 본 위벽에는 분노의 주먹처럼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예약해 놓고 최소 열흘은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한다기에 남편에게 간단한 요리법과 밥 하는 법, 그리고 세탁기 사용법 등 집안일을 며칠에 걸쳐 반복하여 가르쳤다. 예상대로 남편의 일 터득 실력은 형편없었다.
수술을 받고 통증 때문에 말도 못하는 내게 남편은 “세탁기가 안 돌아간다.” “밥솥에서 삐삐 소리가 나는데 어떻게 해야 하노?”하고 쉴 새 없이 전화를 했다. 어찌나 전화를 자주 하는지 옆 침대에 누워 있던 아주머니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아서 할 일이지, 아픈 사람한테 지금 뭐하는 짓이고?”하며 화를 내었다. 이렇게 하여 겨우 익힌 실력이라 잊지 않고 있는지 확인하듯 이후로는 자주 밥을 한다. 가끔은 고등어조림, 김치찌개를 끓여 밥상을 차리기도 한다. 이것이 남편이 내미는 전업주부라는 명함 속의 이력이다.


전업주부의 실력을 발휘하여 아침밥을 해놓은 날 아침이면 남편의 바가지 연주는 한 옥타브 올라가 단연 독보적이다. “내가 밥 다 해놓는다고 아예 똥꼬에 해가 돋도록 자는 기가. 오늘은 출근 안 해도 되나?”로 시작해서 “쪼매만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날 수 있을 낀데 뭐한다고 밤늦게까지 안 자고 있다가 아침에 못 일어나 비실대노, 십 분만 일찍 일어나면 될 걸 가지고, 그걸 왜 못하는 지. 내사 이해가 안 간다. 그런 정신 상태로 뭘 해 먹겠노. 내가 안 깨웠으면 아직도 잘 거 아니가. 내 아니면 맨날 지각할 끼다. 참말로 한심해서. 쯧쯧쯧.” 혀까지 차면서 잘 들으라는 듯 내 뒤를 따라다니며 바가지를 긁는다.  <!--[endif]--> 
“반찬은 한 끼 먹으면 없어지게 조금만 하라고 그만큼 말해도 또 된장찌개를 언버지기나 끓였나. 하루 종일 된장만 먹으라는 기가? 이래가 안 먹고 버리면 안 아깝나.”
끝이 없는 남편의 바가지 긁는 소릴 들으며 입을 꾸욱 다물고 일만 하는 나는 밖에서 남이 들으면 불량주부임에 틀림없다. 친정엄마는 내 손이 저울이라고 했다. 그만큼 음식 양을 잘 조절하고 버리는 음식이 없다는 뜻이다. 음식을 먹을 만큼만 계산해서 하는 탓도 있지만 나를 빼고는 식구들이 다 식욕이 왕성해 무엇이든 잘 먹어 남아 버리는 음식은 거의 없다. 식욕도 식욕이지만 남편은 바가지를 많이 긁는 만큼 배고픔을 참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야 식전이거나 말거나 배가 고프면 우선 자기부터 먹고 본다. 때문에 늦게 먹는 사람은 음식이 모자라 다시 밥이나 반찬을 해서 먹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 남편은 어김없이 "밥 다 먹었는데 이래 음식 많이 해가 빨리 못 먹어 쉬면 우얄라 카노.” 하고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잘하면, “쪼매 더 신경 썼으면 더 좋을 낀데 그래 밖에 못하나.” 하고, 실수라도 하면 “사람이 우째 그리 둔하노. 그런 머리도 안 돌아간단 말이가.” 한다. 비 들면 “방 쓸어라.” 걸레질을 하면 “저 텔레비전 위에도 좀 닦아라, 당신 눈에는 저 먼지가 안 보이나?” 이렇게 끊임없이 긁어대는 남편의 바가지에 처음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남편이 바가지를 긁기 시작하면 귀를 털어 막고 땅속으로 꺼지든지 하늘로 증발해 버리고 싶었다. 내가 싫다는 표정을 짓거나 언성을 높이기라도 하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된다. 정성으로 최선을 다해 충고하는 귀한 말을 끊는 것은 사람을 무시하는 행위라며 화를 내고, 발악이라도 하는 날에는 “이기 미쳤나?” 하고 털을 세우듯 동물처럼 화를 낸다. 이럴 때 힘없고, 말발 약한 나는 그저 죽은 척 찍! 소리도 않는 게 상책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꾹꾹 참다보니 세월이 약이었던지 남편의 잔소리도 냉장고 문을 여닫는 소리처럼 들리는 날이 많아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남편이 바가지로 쏟아 붓는 말들이 시나브로 나를 씻겨 온 것 같기도 하다. 말 많은 말이 시비가 되어 시작된 말싸움이 나중에는 몸싸움으로 번져 막대한 정신적, 경제적 상처의 흔적을 남기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거의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자 그 말없음마저 남편의 바가지에 자주 담겼다. 내가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않고, 시비를 가리려 애쓰지 않는 것을 남편은 비열한 방관자의 짓이라며 비난한다. 때문에 나는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산다.  
아직도 남편의 바가지 긁는 듣기 좋을 때보다 싫을 때가 더 많다. 특히나 아침에 긁는 바가지는 짜증이 난다. 그러나 남편은 “이 세상에 나만큼 널 사랑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하는 말로 자신의 바가지를 사랑의 증표인양 베이스로 깐다.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나는 화를 내다가도 피식 웃고 만다. 개인 사업을 하면서, 또 직장을 다니면서 귀에 거슬리고, 속을 후리는 말을 묵묵히 다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은 남편이 날마다 바가지로 내 마음의 위장을 튼튼하게 단련시켜 놓은 까닭이다. 결국 남편의 바가지가 나의 마음 그릇을 날마다 씻고 키워온 것이다. 지긋지긋하다고 고개를 흔들면서도 흐뭇하게 집으로 향하는 이 세상 많은 남편들의 속마음은 아내가 쉴 새 없이 퍼붓는 바가지에 하루의 피로를 씻는 것은 아닐까.
부부가 오래 같이 살다보면 바가지 긁는 소리도 때때로 사랑의 변주곡으로 혹은 바람소리, 물소리로 들리기도 하는 법이다. 향기로운 장미라고 한 색, 한 모양이 아니고, 같은 나무라도 뻗은 가지마다의 모양이 다른데 사람이야 말하여 무엇 하리.
세차장을 나와 달리는 차창으로 들어오는 풍경이 환하다. “세차를 하긴 했는데 혹, 껍데기만한 거 아니가. 차 안까지 다 했나?” 하며 차 안을 살피며 바가지 연주 꺼리를 찾는 남편을 생각하며 입 꼬리가 올라간다. 이런 나를 보고 한 언니는 “문-디.”하고 눈 꼬릴 올릴 것이다. 바가지의 대가들이여! 그대들의 명예 회복을 위하여 바가지의 틀을 깨뜨리시라. 칭찬, 격려, 감사, 용기, 사과, 사랑을 그득히 담아 바가지가 행복의 간주곡(interlude)이 되게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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