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 이규석
모처럼 옛 친구들과 어우렁더우렁 둘러앉았다. 목로주점에서 잘 구운 노가리를 안주로 소주잔을 주고받는데, 자식 농사 망쳤다는 친구의 넋두리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송창식이 부른 ‘명태’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 ’
허구한 날 겨울 바다를 거슬러 올라야 하는 명태는 이름이 많아도 쓰임새마다 사람들의 입맛을 당긴다. 가까운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생태는 탕으로서 으뜸이요, 먼바다에서 잡아와 얼린 동태는 서민들의 추위를 녹여주는 찌개가 되거나 명절에는 흔쾌히 담백한 전이되기도 한다. 추운 들판에서 얼고 녹기를 반복한 황태는 제사상마다 귀히 오른다. 말라서 수분이 다 빠진 북어는 술꾼들에게 최고의 해장국이 되고 방망이에 두들겨 맞으면 솜털 같은 보푸라기로 무침이 된다. 껍질은 불에 구워 참기름과 함께 무쳐지면 맛깔스럽게 손님상에 오른다. 창자는 소금에 절여져 창난젓이 되고 알은 곰삭아서 명란젓이 되니 명태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이뿐이랴, 반쯤 말린 코다리는 매콤한 찜으로 으뜸이요, 새끼인 노가리는 술안주로 제격이다.
남자는 명태를 즐겨 먹다가 명태를 닮아버렸는지 참 많은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떳떳한 자식 도리에 괜찮은 남편 역할, 당당한 아비 구실과 직장에서는 탁월한 상사 노릇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두루두루 잘해야 사나이답다니 속이 터지고 등골은 휠 수밖에. 사실은 어느 하나에서도 잘하기가 쉽지 않은데 혹 어느 하나라도 뒤지면 사람대접을 못 받으니, 명태의 화려한 변신이 부러울 따름이다.
찬 바다를 거슬러 오르는 명태처럼 싫든 좋든 일에 빠져 내달렸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죽어라 일하는 것이 가족을 먹여 살리는 유일한 길이었고 부모님께는 밥벌이 걱정 끼치지 않는 것이 아들로서의 첫 번째 도리였다. 겨우 살만해져서 뒤돌아보니, 부모님은 고향처럼 늘 그 자리에 계신 것이 아니었다. 세월아, 나는 어쩌란 말이냐, 덩그런 무덤 앞에서 넋을 놓고 속울음을 울어야 했다.
사랑한다는 말이 굳이 없더라도, 그 자리에 있기만 해도 좋은 남편이라 하던 아내가 인제 와서는 정겨운 사랑이 아쉬웠노라 한다. 결혼기념일 선물이 몇 번 빠졌나? 밥만 먹고 사느냐는 야릇한 아우성의 뜻도 그때그때 새겼어야 했는데 아뿔싸 이를 어쩐담, 아무리 뜻이 달랐어도 눈까지 희게 치켜뜨진 말았어야 했다.
멍한 시선으로 자식들을 돌아보니 아이는 제 혼자서 자란 듯 마른 명태처럼 뻣뻣해져 있다. 자식들 기죽이기 싫어 몸이 아파도 마음 놓고 드러누울 수 없었고, 윗사람과 뜻이 달라도 때로는 비굴하게 웃음 지어야 했다. 치열하게 벌어 과외까지 시켜서 대학 보냈고, 철철이 메이커 옷도 사주지 않았느냐고 나무랐지만 다른 집 아빠들도 다 그랬단다. 돈으로 훌륭한 아비가 되는 것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으니 무슨 소용이람. 한잔 술에 불콰해진 취기마저 천리만리 달아났다.
직장에선 직원들에게 날렵하게 헤엄치는 명태처럼 함께 달리자 했더니, 세파가 거칠고 일이 너무 무거워 따르기가 힘겨웠단다. 난 정녕 그들에게 정다운 상사가 아니었을까? 나름 따뜻한 사람이 되려고 밥도 사고 커피도 함께 마시며 내 가슴을 열어젖혔는데, 자주 술잔을 높이 들어 올리지 못한 게 죄였나 보다. 하기야 술이 능력인 시대였으니까.
일은 낮에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바닷속 명태가 떼 지어 다니듯 우리는 밤에도 몰려다녔다. 직장 동료의 부모님들은 멀쩡하게 살아계셨어도 차례대로 고인 아닌 고인이 되었다. 그리 날조된 상갓집에서 밤새워 술 마시고 고스톱판을 벌이곤 하면서, 추렴한 부조금은 술값이 되고 노름 밑천도 되었다. 나쁜 짓도 같이 해야 동료가 되는 세상 속에서 모난 사람이 되지 않으려 부지런히도 허우적거렸다.
어부의 그물에 걸린 명태는 눈보라 휘몰아치는 덕장에서 얼어 죽었다가 아낙의 손에 찢겨서 죽고, 술꾼을 위해서는 기꺼이 끓는 물에 삼켜서도 죽는다. 비록 두 눈 부릅뜨고 입을 삐죽이 내밀었을지언정 말없이 떠난 명태. 죽고, 죽고, 또 죽어도 화려한 입맛으로 돌아온 그가 어찌 고맙지 않으랴.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 명태 명태 이 세상에 살아 있으리라’
‘명태’라는 노래가 끝나가고 있었다. 이젠 나도 누군가에게 한 입맛 되어야 할 텐데 어쩌면 좋으냐, 명태야.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란/조현숙 (4) | 2024.10.17 |
---|---|
꽃분이들을 위한 헌사 / 허창옥 (6) | 2024.10.13 |
강변에 살면서 / 설성제 (1) | 2024.10.08 |
밥 / 허창옥 (0) | 2024.10.03 |
꽃 접接, 그 신작 쓰기/염귀순 (4) | 2024.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