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화 (風化) / 박종희
오래된 사찰이 안겨주는 편안함과 축적된 시간이 느껴지는 단청의 멋스러움에 끌려 절을 찾는다. 고찰(古刹)의 역사만큼이나 마음이 깊어지는 곳.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린 날, 마곡사에 발길이 닿았다. 눈 위에 먼저 길을 내준 사람들의 발자국을 밟으며 들어서는데 속세를 벗어나 법계로 들어선다는 해탈문이 반긴다. 사찰의 정문 역할을 하는 해탈문과 천왕문을 통과해 경내에 들어섰다.
고작해야 30여 분 거리에 있는 마곡사를 얼마 만에 왔는지. 코로나가 발생하기 훨씬 전에 다녀갔으니 족히 5,6년은 지난 것 같다.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비스듬한 듯 불안해 보이던 5층 석탑도 그대로다.
연말이라 그런지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며 탑돌이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들을 뒤로하고 대광보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올해 유난히 도섭 부렸던 기후 탓인가. 화려하던 팔작지붕의 모습도 다소 숙연해 보였다.
긴 세월 바람과 햇살의 손길로 쓰다듬은 빗꽃 창살과 꽃살무늬 창호에서도 수선거림이 느껴지고. 수많은 인연들이 스쳐 간 듯 손때 묻은 출입문 기둥은 껍질이 벗겨져 목리가 보였다. 우려했던 것이 확인되듯 내부에 단청공사를 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빛바래고 낡은 것이 어디 그들뿐이랴. 팔작지붕 아래 용 모양 조각의 서까래와 공포의 빛바랜 색깔에서도 세월로 접힌 주름이 보였다. 군데군데 시간이 새긴 상처가 사찰의 내력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수수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자태만은 여전했다.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면서 어떻게 이토록 단아하게 늙어갈 수 있을까. 성질이 유순한 나무집이기 때문일까? 나무로 이은 건축물은 혹한의 추위와 폭염을 꾹꾹 눌러 안으면서도 티를 내지 않는다. 숱한 사연을 나이테 한 줄로 새길뿐 사람처럼 억울함을 하소연하기는커녕 더 과묵하고 단단해진다.
된바람에 지난 생이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몸피를 덜어낸 걸까. 다소 가벼워 보이는 단청의 무늬와 색깔도 연해지고 벗겨진 기둥에 코를 대면 날내가 날 듯도 하다. 묵언수행으로 해탈한 스님과 지내면서 건축물도 달관의 경지에 든 걸까. 웬만한 일에는 흔들림이 없다는 듯 마음에 중심을 잡고 서 있는 대광보전이다.
환갑을 넘긴 내 모습은 어떠한가. 색과 색이 섞이며 하루가 물들어가는 시간, 내공으로 편안하게 관람객을 맞고 있는 대광보전 앞에서 내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야윈 얼굴에 강한 이미지를 풍기는 광대뼈가 오늘따라 도드라져 보인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그루잠을 자니 눈 밑도 어둡고 움푹 파여 선명한 팔자 주름도 가관이다. 물기 없이 칙칙한 얼굴에는 어느새 기미도 얼룩얼룩하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 무슨 장한 일 한다고 잠 설치며 발버둥 치는지.
사람은 나이 들면서 생기는 주름도 있지만, 인간관계에서 마음 사용을 잘 못해 발생하는 풍화도 있다. 몇 년 전, 나도 땅이 흔들리는 것처럼 내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렸던 적이 있다. 언제나 내 편이던 친정어머니가 한마디 언질도 없이 내 곁을 떠나셨다. 갑자기 닥친 이별에 기가 막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추억하며 편안하게 보내드려야 했는데. 고인을 앞에 모셔놓고 생전에 누가 더 잘해드렸는지 생색 내기에 바빴던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앞이 아뜩해진다. 내 슬픔만 앞세우느라 어머니와의 시간을 삼켜버린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태풍이 휩쓸고 가면 건축물이 망가지고 상처가 생기듯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내 몸에도 풍화가 일어났다. 그때 내 살 궁리로 상심에 빠져 지내느라 얼굴에 그늘이 생겼다.
같은 태풍이 훑고 지나가도 건축물에는 자연스러운 무늬가 생기는데 사람의 얼굴에는 왜, 깊은 주름이 생기고 인상도 변할까? 건물이라고 아픔이 없을까만, 건축물은 바람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며 비를 맞아들인다. 한데 사람은 어떤가. 어떻게든 바람을 피하고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 않는가. 그처럼 고통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다르기 때문이지 싶다.
내가 어머니와의 이별을 핑계로 허우적거릴 때, 대광보전은 지붕이 흔들리는 사나운 비바람이 휩쓸고 가도 다시 밝은 날이 오리라는 희망으로 버텨 냈고. 찌는 듯한 더위에 목이 타들어 가도 곧 서늘한 저녁이 오리라는 마음으로 이겨냈기 때문에 은은하고 고풍스럽게 나이 들었으리라.
대광보전에서 내려와 5층 석탑에 눈을 돌린다. 층층이 쌓은 돌탑에도 언틀먼틀하게 파인 상처가 보인다. 세파에 흔들리고 젖으면서도 내면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얼마나 마음을 다독였을까. 시간이 휘두르는 소멸의 고통을 묵묵히 견뎌낸 석탑이 내심 대견해 보였다.
풍화는 어쩌면 모든 생명과 사물의 원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니 너무 애쓰지 말라고 내게 일침을 가하는 것 같다.
천년의 내밀한 역사를 간직한 경내를 거닐면서 인간을 생각한다. 요즘 티브이를 보면 사람들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평생 나이 먹지 않을 것처럼 갈수록 노인의 모습은 없어지고 인조 인형같이 정형화되어 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건축물처럼 욕심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이 들면 얼마나 좋을까. 건물이나 사람이나 늙어가는 모습은 같을 테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풍화를 거치듯이 우리도 풍화된 삶으로서의 나이 듦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세월의 노화 앞에서 아득바득거리는 사람들에게 대광보전이 보여주는 것 같다.
얼룩과 주름으로 가득한 것이 삶이지만 자연스러운 풍화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나이 듦이라고. 욕심을 비우고 우아하게 나이 들어가라고. 대광보전이 일러주는 풍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