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갈 곳 잃어 떠도는 나뭇잎이랑, 꼭 다문 어둠의 입속에 있다 한숨처럼 쏟아져 나오는 바람이랑, 상처에서 상처로 뿌리를 내리다 갈대밭이 되어버린 적막이랑, 지나는 구름의 손결만 닿아도 와락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별이랑, 어느새 잔뿌리부터 하염없이 젖기 시작하는 풀잎이랑, 한 줌의 흙 한 그루의 나무 없인 잠시도 살 수 없는 듯 어느 결에 맨발로 내려와 둑길을 걷는 달빛이랑 ㅡ함명춘(1966-- )
책의 옛 사진을 보다가 지금의 내 사는 동네를 만나 반가웠습니다. 반쯤 부서진 살곶이 다리 풍경이었는데요, 돌다리 저편 뚝섬 언덕 위가 아름다운 ‘둑길’이었습니다. 둥글게 둥글게 곡선으로만 이어진 그 생명 가득한 길 위에 어린아이들이 노는지 걷는지 아득한 몇 점으로 보였는데 보나마나 신이 났겠습니다. 그 둥긂의 세계에서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지금, 그쪽은 차들 쌩쌩 달리고 시멘트로 직각 벽을 해놓았습니다. 발전한 걸까요? 글쎄요. 이 시를 만나니 저절로 그 풍경이 떠오릅니다. 시에 ‘둑길’의 중생(衆生) 이 즐비합니다. ‘나뭇잎’, 어둠에서 쏟아져 나오는 ‘바람’, 적막의 ‘갈대밭’,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별’들…. 이것을 향한 마음이면 시쳇말로 ‘힐링’입니다. 인간들에게 지친 삶을 이 ‘둑길’의 뭇 생명들이 치유합니다. ‘큰물’이 날 때마다의 쓸모이니 평소에는 아무 일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 아무 일 없는 듯한 것의 큰 쓸모를 ‘효율’이라는 좀벌레는 알 턱이 없으니 이제 자연에서나 사회에서나 ‘둑길’은 잘 없습니다. 휘파람 불 데가 없습니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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