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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새우젓/이방주

에세이향기 2021. 5. 4. 15:26

새우젓

 

이방주

금년에는 강경이나 광천에서 성황을 이룬다는 새우젓 축제에 꼭 한 번 가보려고 했다. 그러나 또 가지 못했다. 내가 게으르기도 하지만 다른 해에 비해 꼭 가야할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축제구경을 하기 위해서라면 몰라도 새우젓을 구하기 위해서는 내년에도 후년에도 당분간을 가지 못할 것 같다. 아직도 몇 년을 먹을 만치 새우젓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 식구들은 새우젓을 좋아한다. 특히 아버지께서는 새우젓 없이 진지를 드시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도, 공연히 젓가락을 들고 방향을 잡지 못하실 때가 많다. 노인들은 짜고 매운맛이 있어야 입안에 침이 고이고, 침이 생겨야 목이 부드러워지시는 모양이다.
새우젓은 알이 굵은 것보다는 알이 잔듯하면서도 오동통하고, 배때기가 아주 희고 깨끗하며, 그 꼬리의 붉은 빛이 선명한 것이 좋다. 쓸떼 없이 수염이 길어도 못쓰고, 등껍질이 두꺼워도 잘 삭았다고 할 수 없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허리를 알맞게 구부리고 머리를 앞발에 대고 앉아서 먼 고향 바다를 그리워하는 듯한 놈이어야 제 맛이 난다.
그렇게 잘 삭은 새우젓을 투명한 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조금씩 꺼내서 갖은 양념을 하여 밑반찬으로 내어 놓는다. 새우젓을 알맞게 넣고 탕기에 넣고, 고춧가루, 파, 마늘, 깨소금, 식초, 참기름을 넣고 비비면 맛있는 새우젓 무침이 된다. 새우젓 무침은 그냥 밑반찬으로 먹을 수도 있고 제육을 곁들인 쌈밥을 먹을 때 제격이다.
새우젓을 무침으로 먹을 수도 있지만, 호박 새우젓국은 여름철 구미를 돋구는 데는 더할 게 없다. 뚝배기를 불에 올려놓아 약간 달군 다음, 호박을 잘게 썰어 넣고 물을 알맞게 부운 뒤, 새우젓을 간을 맞추는 정도로 넣어 바글바글 끓이면 그것이 곧 호박 새우젓국이다. 짭짤하면서도 담백하여 어른들 밥상에는 일품으로 어울리는 새우젓 요리이다.
새우젓은 이렇게 직접 요리를 해 먹을 수도 있지만, 김치 담그는 데는 빠져서는 안 되는 양념으로 쓰인다. 새우젓이 좋으면 그해 김장은 반은 성공한 것이다. 대부분의 김장에 새우젓이 들어간다. 배추김치, 총각김치, 깍두기에도 새우젓은 약방의 감초다.
누님이 담근 새우젓은 시자에서 파는 것과 비교도 안될 만큼 맛이 있었다 이렇게 우리 집에 요긴한 새우젓을 최근 몇 년간 서방정토에 계신 둘째 누님이 대셨다. 새우가 한창 잡히는 계절에 운전을 못하시는 누님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소래포인가 하는 새우젓 시장에 혼자 가셔서는, 몇 말이고 새우를 사다가 소금을 얹어 집에서 새우젓을 담그신다. 그래서 그 새우가 잘 삭아 맛이 들기 시작하면, 빈 병이나 항아리에 담아 피붙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으셨다.
누님이 담근 새우젓은 고소하고 알맞게 짭짤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었다. 내가 맛있는 새우젓의 표본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누님의 새우젓 때문이었다. 백화점에 진열된 금값처럼 비싼 새우젓을 보면 새삼 그때 마음 놓고 먹던 새우젓을 가늠하면서 누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뼈가 저리다.
거의 이십년을 아버지와 함께 사신 누님은 까다롭고 깔끔하신 아버지의 식성을 잘 아신다. 그래서 새우젓이 익으면 제일 먼저 한 항아리를 담아가지고 우리집에 오신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가 계신 우리집을 친정으로 생각해 주셨다. 막내인 아는 이것이 무척 영광이었다. 우리집에 오시는 날을 한 이틀 전부터 전화를 하신다. 친정에 오시는 일이 환갑이 가까워 와도 그렇게 달뜨는 일이었나 보다.
아주 아침 일찍 이것저것 챙겨서 내려 오셔서는 짐이 많은 날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전화를 하시기도 한다. 이런 날은 아미타의 나라에 계신 어머니가 잠깐 들러 가겠다고 전화를 한 것처럼 나까기 기쁘고 달뜬다. 마흔이 넘었어도 나이 어린 올케가 아버님과 같이 사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하시는 누님은 아내의 친정어머니처럼 이것저것 챙겨 오신다. 그리고는 소래포에서 새우 사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신다. 지금도 누님의 새우젓을 먹으려면 약간 흥분되어서도 그 타고난 유머를 잃지 않으시던 누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누님은 오래 전부터 암으로 고생하셨다.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고 한 십년을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이제는 더 이상 검사받을 필요가 없을정도로 ’ 완치되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쾌활하게 자랑하시던 모습이 얼마나 우리 혈육을 기쁘게 하였던가? 그러나 그런 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다른 암으로 다만 몇 달 고생을 하시다가 서방으로 떠나셨다.
우리말에 ‘속 썩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이 곧 암을 일컫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걱정거리가 있어도 혈육에게 눈치를 채지 못하게 우스개를 하면서 안으로 견디던 누님의 속이 온전할 리가 없다. 평생을 남을 위해서만 살아오신 누님의 그 내면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에서 피가 묻어나는 듯하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 그렇게 정이 도타우셨던 어머님을 만나셔서 기쁘겠지만 남은 우리에게는 아픔만을 남기신 것이다.
누님은 서방으로 떠나실 채비를 하던 작년 여름 아버지 생신에 참석하지 못하셨다. 기력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투병의 모습을 아버지께 보이고 싶지 않은 타고난 효성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튿날 누님에게로 갔다. 항암 치료로 빠진 머리를 보이고 싶지 않으셔서 머리에 손수 모자를 만들어 쓰고 계셨다. 그러나 얼굴에는 평소처럼 행복 가득한 웃음을 담고 계셨다. 우리가 가져간 떡을 그렇게 맛있게 드셨던 것이 말기 암 환자인 누님에게는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었나를 미련한 나는 그로부터 한 달 쯤 뒤 병상 일기를 보고 알았다. 아직도 정정하던 누님은 겨우 한 달을 넘기고 떠나신 것이다.
우리가 나올 때 바깥까지 나오셔서 그 해 담근 새우젓을 한 통 주셨다. 내가 겨우 들 정도로 무거웠다. 누님의 얼굴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이었다. 대문을 나서서 좁은 골목을 빠져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골목 끝에서 웃음을 보이고 계신 누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새우젓 통 무게만큼의 슬픔이 짓눌렀다. 그 웃는 모습 뒤로 누님은 이미 죽음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 관음보살 같은 미소가 마지막이 될 줄도 모른다는 생각을 왜 못했는지 모른다.
집에 돌아와 통을 펴고 새우젓을 맛보니 지금까지 누님의 새우젓 맛이 아니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짜다. 그냥 두고 먹으면 몇 년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우들에게 주는 정에 특히 욕심이 많았던 누님은 이렇게 당신의 정을 남기는 데에도 욕심을 부리셨다.
아직도 누님의 새우젓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 짠맛을 나는 아우를 생각하는 누님의 저의 깊이이며, 일생을 통하여 당신 것을 버리고만 사시면서도 버릴 수 없었던 혈육을 향한 세속적 욕망이라 생각되어 더욱 가슴 한 구석이 시리다. 요렇게 구부리고 앉아서 앞발 두 개를 머리에 대고 있는 새우 한 마리 한 마리를 볼 때마다 누님이 이 미련한 막내 아우를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새우젓 축제에는 언제 한 번 가보나? 누님의 새우젓이 저렇게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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