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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라서 당신/전영관

에세이향기 2022. 2. 19. 11:20

새해라서 당신/전영관

붙박이장처럼 완고해서
당신을 숨막히게 했다
채칼 같은 단호함을 명쾌함이라며
타협도 없는 일곱 살마냥 우쭐거렸다
고장난 전기주전자여서 그칠 때를 찾지 못하고
불안하게 했다
후춧가루만큼 예민한 성격을 자상함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떨어뜨린 소금 그릇처럼 강퍅으로만 악화시켰다
가득찬 쓰레기통 속 나태를 머뭇거림의 매력으로 둔갑시켰다
내심 반성하면서, 부러워하면서
도마만큼 자명한 타인의 결단들을 무모함이라 빈정거렸다
냉동고같이 외골수로 지겹게 했다

깨진 간장 항아리로 쓰러져
당신의 통곡이 응급실을 채웠다

가족이란 천막 안에서
당신을 막막하게 했다
무관심을 고부 관계의 중립이라 착각했다
사위 노릇을 손님인 척하는 것으로 알았다
눈치 없음을 시라는 몰입의 부작용이라고 방심했다

동그란 뒷모습에서 태산의 바위를 느낀다
핏기 없는 미소에서 천 길 벼랑이 보인다
주방을 오가는 종종걸음에서 맨발로 걸어온 구만리도 보인다
당신을 문장의 중심에 모신다
고마웠노라 다짐해보면, 후회는 매번 앞질러 온다
행여라도 장병으로 누우면
간병인은 자처할 테니 염려 말라고 손을 쥔다
바보 같아 울대를 막는 나만의 당신
내 아내

- ‘새해라서 당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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