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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은 콩/마경덕

에세이향기 2022. 2. 16. 17:37

볶은 콩

마경덕

날콩을 볶는다

비린 피가 고소해지도록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콩, 뜨거운 냄비를 주걱으로 휘저어도

아직 비리다

타닥타닥 튀어오른다

 

콩의 말을 한 번도 배운 적 없어

참 다행이다

 

내가 아는 말은

도르르, 콩콩, 데굴데굴, 겨우 그 정도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흩어지지 않게 자루에 넣거나 봉지에 담는 정도

 

둘러앉아 콩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아이들

콩 한 줌에 벌어지는 입들

 

고소한 피 냄새가 거실까지 날아간다

 

콩대는 콩잎을, 콩잎은 꽃을 피워

방방마다 콩을 낳고

꼬투리 꼭 닫아건

 

​콩, 오늘 내 손에 죽었다

 

콩의 말을 알지 못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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