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시

첫눈/장석주

에세이향기 2022. 7. 18. 13:31

첫눈

 

장석주

 

 

첫눈이 온다 그대

첫사랑이 이루어졌거든

뒤뜰 오동나무에 목매고 죽어버려라

 

사랑할 수 있는 이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첫눈이 온다 그대

첫사랑이 실패했거든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눈길을

맨발로 걸어가라

맨발로

그대를 버린 애인의 집까지 가라

 

사랑할 수 없는 이를 끝내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다.

 

첫눈이 온다 그대

쓰던 편지마저 다 쓰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들에 나가라

 

온몸 얼어 저 첫눈의 빈 들에서

그대가 버린 사랑의 이름으로

울어 보아라

 

사랑할 수 없는 이를 사랑한

그대의 순결한 죄를 고하고

용서를 빌라       

  

[감상]

첫사랑, 생각만 해도 왠지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명치 끝이 먹먹해지는 그런 단어다.

사람들은 철부지 시절의 풋풋한 첫사랑’을 왜 쉬이 잊지 못하는 걸까

러시아의 심리학자는 이와 같은 현상을 자이가르니크(Zeigarnik)’

증후군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뤄지지 못해 가슴 아프고 미완성으로 남아 더 아름다운 사랑,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찾아오는 투명한 슬픔,

그것이 첫 사랑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첫사랑만큼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다뤄지는

소재도 없을 것이다.

영화 러브레터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아직도 아련한 첫사랑의 전형으로 기억되고 있다.

시인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끝내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얘기한다.

진정한 사랑은 청춘을 걸고, 목숨을 걸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다.

인스턴트 사랑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그와 같은 사랑이 있기는 한 걸까

늘 첫눈의 풋풋함으로 기억되는 세상의 모든 첫사랑에게 가끔은 안부라도 전해보자

나는 잘 지냅니다잘 지내시지요. 잘 지냈으면 해요. 정말로...

(양현근 / 시인)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박 보름달/김영애  (0) 2022.07.27
어둠을 더듬다/최정신  (0) 2022.07.20
나무말뚝/마경덕  (0) 2022.07.18
쑥부쟁이 / 박해옥  (0) 2022.07.17
구슬을 꿰다/조경희  (0) 2022.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