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장석주
첫눈이 온다 그대
첫사랑이 이루어졌거든
뒤뜰 오동나무에 목매고 죽어버려라
사랑할 수 있는 이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첫눈이 온다 그대
첫사랑이 실패했거든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눈길을
맨발로 걸어가라
맨발로
그대를 버린 애인의 집까지 가라
사랑할 수 없는 이를 끝내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다.
첫눈이 온다 그대
쓰던 편지마저 다 쓰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들에 나가라
온몸 얼어 저 첫눈의 빈 들에서
그대가 버린 사랑의 이름으로
울어 보아라
사랑할 수 없는 이를 사랑한
그대의 순결한 죄를 고하고
용서를 빌라
[감상]
첫사랑, 생각만 해도 왠지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명치 끝이 먹먹해지는 그런 단어다.
사람들은 철부지 시절의 풋풋한 ‘첫사랑’을 왜 쉬이 잊지 못하는 걸까
러시아의 심리학자는 이와 같은 현상을 ‘자이가르니크(Zeigarnik)’
증후군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뤄지지 못해 가슴 아프고 미완성으로 남아 더 아름다운 사랑,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찾아오는 투명한 슬픔,
그것이 첫 사랑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첫사랑’만큼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다뤄지는
소재도 없을 것이다.
영화 ‘러브레터’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아직도 아련한 첫사랑의 전형으로 기억되고 있다.
시인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끝내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얘기한다.
진정한 사랑은 청춘을 걸고, 목숨을 걸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다.
인스턴트 사랑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그와 같은 사랑이 있기는 한 걸까
늘 첫눈의 풋풋함으로 기억되는 세상의 모든 첫사랑에게 가끔은 안부라도 전해보자
나는 잘 지냅니다. 잘 지내시지요. 잘 지냈으면 해요. 정말로...
(양현근 / 시인)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박 보름달/김영애 (0) | 2022.07.27 |
---|---|
어둠을 더듬다/최정신 (0) | 2022.07.20 |
나무말뚝/마경덕 (0) | 2022.07.18 |
쑥부쟁이 / 박해옥 (0) | 2022.07.17 |
구슬을 꿰다/조경희 (0) | 2022.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