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9/11 2

거울 속으로 온 손님 / 이대흠(1967~ )

거울 속으로 온 손님 / 이대흠(1967~ )​ 치매에 걸렸던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하셨다 소파 뒤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어서 나를 볼 때마다 아버지를 보았던 소파였다 낡은 초록색 소파는 아버지의 마지막 주소지였다 아버지는 그곳에 자기 생을 다 놓고 앉아서 창밖만 바라보았다​ 어느날이었다​ 끼니때가 되어 아버지를 부르자 아버지가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거울 속 한 노인을 발견하고는 손을 내밀었다 같이 가서 밥먹읍시다 하지만 거울 속 노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아버지가 밥상 쪽으로 올수록 그 노인은 멀어졌다 어허, 자식들이 다 이해하니 같이 가잔 말이오 아버지가 여러번 권했으나, 거울 속 노인은 겸양한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손을 내밀면 마주하여 손을 내밀었고, 등 돌려 밥상으로 오면 멀어졌다 그 노인..

좋은 시 2024.09.11

비빔밥 / 이대흠

비빔밥 / 이대흠  비빔밥엔 잡다한 것이 들어가야 한다 싱건지나 묵은 김치도 좋고 숙주노물이나 콩노물도 좋다 나물이나 남새 노무새도 좋고 실가리나 씨래기 시락국 건덕지도 좋다 잘못 끓인 찌개 찌끄래기나 달걀을 넣어도 좋지만 빼먹지 않아야 할 것은 고추장이다 더러 막걸리를 넣거나 된장국을 홍창하게 넣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취향일 뿐 그렇다고 국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빔밥엔 여러 가지 반찬과 참기름 고추장이 들어가야 하지만, 정작 비빈 밥이 비빔밥이 되기 위해서는 풋것이 필요하다 손으로 버성버성 자른 배추잎이나 무잎 혹은 상추잎이 들어가야 비빔밥답게 된다 다 된 반찬이 아니라 밥과 어우러지며 익어갈 것들이 있어야 한다 묵은 것 새것 눅은 것 언 것 삭은 것 그렇게 오랜 세월이 함께 해야 한다  하지만 ..

좋은 시 2024.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