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9 24

무성서원, 움직이는 서책/허정진

무성서원, 움직이는 서책                                             허석(허정진)    책 읽는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라 했다. 예부터 ‘꽃향기는 백 리를 가고, 술향기는 천 리, 사람 향기는 만 리를 간다.’라는 말이 있다. 인향(人香)의 싹은 책향(冊香)에서 나온다. 서원은 ‘책의 집’이다. 전통을 계승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배움의 전당이다. 지난 5백 년 조선의 철학과 사상을 관통하던 성리학의 상징적 장소이고, 유가적 이상인 존현양사(尊賢養士)의 실체적 공간이다. 세상에 맛있는 것보다, 눈에 즐거운 것보다 마음에 위안과 평온을 찾고자 할 때가 있다. 나 안의 내가 누구인지, 세상 앞에 흔들리는 마음을 어떻게 다 잡아야 할지 가슴이 답답할 때 선비정신의..

좋은 수필 2024.09.09

꿈틀거리다 - 김승희

꿈틀거리다 - 김승희 어느 아픈 날 밤중에가슴에서 심장이 꿈틀꿈틀할 때도 괜찮아꿈이 있으니까 꿈틀꿈틀하는 거야꿈꾸는 것은 아픈 것토마토 어금니를 꽉 깨물고꿈틀꿈틀바닥을 네발로 기어가는 인간의 마지막 마음(김승희 시집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꿈을 가진 마음서점의 일상을 요약하자면 ‘고요한 가운데 번잡함’일 것이다.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하루를 보내고 밤이 오면 풀려버린 운동화 끈처럼 맥을 놓아버린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그즈음 서점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애틋한 동질감을 느낀다. 김종삼의 시 ‘묵화’ 속 할머니와 소처럼 서로의 부은 발잔등을 위로하고 싶어진다.그날 밤 찾아온 학생은 문 닫을 시간을 넘겨서까지 책장 앞을 서성였다. 잠시 후 계산대 앞에 다가선 그는 시집 말고도 작은 ..

좋은 시 2024.09.06

돌멩이들 - 장석남(1965~ )

일러스트=양진경돌멩이들 - 장석남(1965~ )  바닷소리 새까만돌멩이 너덧 알을 주워다책상 위에 풀어놓고읽던 책 갈피에도 끼워두고 세간기울어진 자리도 괴곤 했다잠 아니 오는 밤에는 나머지 것들물끄러미 치어다도 보다가 맨 처음이 돌멩이들 있던 자리까지를궁금해하노라면,구름 지나는 그림자에귀 먹먹해지는 어느 겨울날 오후혼자 매인늦둥이 송아지 눈매에 얹힌낮달처럼저나 나나살아간다는 것이,이렇듯 외따로 있다는 것이,  바닷가에서 주워 온 돌이 몇 개 있다. 까만 돌의 표면에는 물결무늬가 흐르고 파도 소리가 들려왔을 것이다. 몽돌이며 모서리가 덜 깎인 돌, 그리고 조각돌도 있었을 것이다. 시인은 그 돌로 책장을 눌러놓거나 집 안 살림에 쓰는 물건의 평형을 맞추려고 아래를 받치기도 한다. 그러다 돌이 최초로 놓여 있..

좋은 시 2024.09.06

숲의 정거장 / 곽효환

숲의 정거장 / 곽효환  사람들 드문드문 들고 나는호젓한 시골마을 간이역 철길을 이어백두대간 숲 속 깊은 곳에작은 역 하나 더 지어야겠다간이역과 간이역을 잇는 기차하루에 한 번 혹은 두 번 오고가게 해야겠다 비자나무 가죽나무 굴참나무 측백나무 팔 벌리고작은 짐승들 새들 벌레들 분주함 가득한숲의 정거장엔철커덕 철커덕 쉼 없이 달려왔을 기차도같이 온 바람도 잠시 숨 고르리라플랫폼에 이어진 호젓한 오솔길 따라나란히 흐르는 계곡물에 발 담갔다가단청 고운 절집 탱화아래 앉아잠시 먼 산에 한눈팔아도 좋겠다세상의 시간과 일상이 한동안 멈춰몸 부리고 쉬었다 느릿느릿 흘러가는작은 역 하나 숲의 양식대로 지어야겠다 빛바랜 회색 기와집 아래 의상실과 세탁소슬레이트 지붕집엔 전파사와 분식집붉은 벽돌집에 포목점과 연쇄점그리고 ..

좋은 시 2024.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