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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의 불빛/이준관

에세이향기 2021. 5. 12. 21:33

부엌의 불빛

 

이준관

 

부엌의 불빛은
어머니 무릎처럼 따뜻하다.

저녁은 팥죽 한 그릇처럼
조용히 끓고,
접시에 놓인 불빛을
고양이는 다정히 핥는다.

수돗물을 틀면
쏴아 불빛이 쏟아진다.

부엌의 불빛 아래 엎드려

아이는 오늘의 숙제를 끝내고,
때로는 어머니의 눈물,
그 눈물의 등유가 되어
부엌의 불빛을 꺼지지 않게 한다.

 

불빛을 삼킨 개가 하늘을 향해 짖어대면
하늘엔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첫 별이
태어난다.

―이준관(1949~ )

 

불,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서 이런저런 것들을 구워 먹고 살았습니다. 그 바깥에 기둥을 세우고 얽어서 지붕을 올려 '집'이라는 것을 지었습니다. 부엌만 있는 집이지요. 그 집의 자애로운 왕은 어머니! 식구들을 골고루 나눠 먹이고 키우는 왕이지요. 지금 자리에 없으면 남겼다가 나누는 공평한 관리이기도 하지요. 어머니의 입으로는 가장 나중 것이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그 '부엌의 불빛'은 그러므로 그대로 사랑을 상징

하는 불빛이 되지요. 고양이도 개도 그 사랑(불빛)을 먹고는 좋아 하늘을 향해 짖습니다. 거기 허기졌던 '개밥바라기'가 태평한 빛이 되어 반짝이지요. 애틋함의 눈물까지도 불러 비춰주던 저 불빛의 전등자(傳燈者)를 찾습니다. 온 나라의 집집마다 저 '부엌의 불빛'이 꺼지지 않도록 할 전등자를 찾습니다. 전기난로 앞으로 무릎을 한 번 더 밀어 넣으며 되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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