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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봄이 오고 있다/ 박시윤

에세이향기 2023. 4. 17. 03:25

봄이 오고 있다/ 박시윤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골목으로 고슬고슬한 봄볕이 쏟아진다. 해묵은 먼지를 말리듯 창문을 열고 볕을 집안으로 들인다. 뜻하지 않은 손님, 볕들이 들어서자 습한 생각을 마구 쏟아놓게 하던 집은 구석까지 환해진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늘 한자리에 웅크려 깊은 한숨과 고통, 그리고 무표정으로 삶을 살던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하루하루는 무의미했고 느닷없는 외출로 가족들을 당황하게 했다. 늘 이불에 얼굴을 묻고 소리 없이 오열하던 여자, 가슴을 후려치며 늘 아프다고만 하던 여자, 그 여자의 그림자가 설풋한 미소를 보이며 제일 먼저 일어선다. 나는 오랫동안의 동거동락을 이별하듯 무언의 미소를 건넨다. 그림자가 떠나간 자리를 오래토록 바라보며 그간, 그녀의 모습을 되짚어 본다. 그리고 넉넉한 봄볕으로 그녀의 습하고도 차가운 구석의 자리를 바싹 말리고 있는 중이다.
 겨우내 바짝 움츠렸던 작은 아이가 밖으로 나가자고 채근한다. 못 이긴 척, 대문을 나선다. 어느새 골목은 기지개를 켜며 아이의 세발자전거를 맞이한다. 오가던 사람들이 저마다의 반가움으로 아이와 인사를 나눈다. 골목 사람들은 새침한 표정으로 바깥출입이 뜸했던 나보다 아이를 더 익숙해하고 있다. 까르르, 다섯 살의 해맑은 웃음은 노년으로 빛이 바랜 골목 구석구석을 환희로 들뜨게 하고 있다. 아무리 찾아봐도 놀이터라고는 없는 세상, 그곳이 바로 내가 사는 늙고 음침한 세상이었다.
 "엄마, 얼른 와요!" 느릿느릿한 내 걸음을 돌아다보며 아이는 또 한 번 기쁜 채근을 한다.
 언제부턴가 이 골목은 밝음보다 어둠이 존재하는 변두리로 퇴색되고 있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 한국동란을 함께 치른 토박이가 대부분이고, 어쩌다 들어온 뜨내기들은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매일 눈뜨면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어느 집 숟가락 수가 얼마인지 조차 꾀고 있는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관심이 싫었다. 검버섯 가뭇가뭇 피어나는 백발의 노인이 대부분이고, 시끌벅적 골목을 누비던 아이들은 장성하여 각자 삶을 찾아 떠났다. 세월은, 고요를 가장한 외로움의 늪으로 골목에 내려 앉았다.
 이태 전, 전당포 어르신이, 석 달 전에는 두부집 안어른이, 그리고 뒤이어 탁배기집 아저씨가 세상을 버렸다. 내가 이 골목으로 시집을 온 것은 벌써 십 사년 전이다. 그때만 해도 왁자왁자하던 시장통 골목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한해, 한해를 거듭하며 한명, 한명씩 내 삶에서 사라지고 있다. 도심의 복판이면서도 모순의 면모를 신랄하게 보여주는 골목의 미래는 암담하기 짝이 없다. 어둡기만 한 이 곳을 몸서리치게 벗어나고 싶어 안달 하면서도 섣불리 떠나지 못하고 있는 나는, 이 골목에서 유일한 젊은 새댁이다. 첫째와 둘째 아이를 낳고 울음이 대문을 넘던 날, "아이고, 우는 것도 어째 저래 이쁘노!" 사람들은 해맑은 웃음과 환희로 화답을 해 왔다.
 골목 토박이인 남편은 올해로 마흔의 중반이 되었다. 남편은 늘 골목일로 정신이 없다. 김씨 할부지네 형광등도 갈아주어야 하고, 성주댁 할맨 얼어터진 수도꼭지도 고쳐 주어야 하고, 장애인 박씨 아저씨네 곰팡이 내려앉은 부엌 도배도 새로 해 주어야 한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남편을 자식처럼 친근하게 부르고 일을 부탁한다. 남편은 그런 부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속도 없는 사람이라고 내가 성을 내면 세상은 원래 다 그런 것이라며 웃음으로 되레 나를 민망케 한다. 그런 남편의 건강한 성격과 체력이 부럽기까지 하다.
 그래, 남편은 분명 내게 부러운 사람이다. 서른 후반의 나는 아이를 키우는 사소한 노동에도 힘이 겹다. 아직 팔팔한 청춘인데 무에 그리 힘이 드는 것인지, 간혹 함께 사는 지체장애인인 시어머님의 체력이 나보다 낫구나, 싶어 죄송해지기까지 한다. 젊고 건강한 나이에 내 삶은 망각하고 싶을 만큼, 아프고 힘이 든다. 내 무의식 속에는, 남편의 무의식 속에는, 큰아이의 무의식 속에는, 언제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약한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다. '나는 못해, 힘들어', '너는 못해, 그냥 앉아 있어', '엄마는 못할 걸'
 4년 전, 암을 계기로 나는 환자가 되었다. 시시콜콜한 것에도 짜증이 났고, 작은 노동도 힘에 겨웠다. 몇 발자국 걸음에도 숨을 허덕였다. 구구절절 삶의 마디마디에서 죽을 것 같은 통증이 일었다. 치열하고 힘겹게 살고 넘어야만 하는 청춘의 고갯마루를 이틀이고, 사흘이고, 열흘이고, 한 달이고, 그저 어둡고 습한 방구석에 틀어박혀 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병病의 족쇄에 얽매여 무의식적으로 자유를 통제 당하며 미래를 저당 잡히고 있었다. 살겠다는 의지보다 죽겠다는 의지가 날마다 강하게 쌓여갔다. 갓, 돌을 넘긴 작은아이가 젖배를 곯을 때 넌지시 아이의 굶주림을 외면했고, 방구들이 내려앉을 만큼 시름했다. 세상에 대한 번뜩이는 호기심보다 죽음 뒤에 있을 평온한 세상이 더욱 궁금했다. 밑바닥의 모습은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나를 무너지게 했다. 청춘의 시간은 내게 현재 진행형이 될 수 없었다. 창백한 얼굴, 깡마른 몸, 퀭한 눈, 바짝 마른 입술…. 끝까지 내가 생각한 것은 절망이었고, 죽음이었다. 어떠한 희망도, 꿈도 내 속엔 자리하지 못했다.
 "엄마, 배고파, 밥 줘" 시간들은 그렇게 아이를 자라게 했고, 아이의 언어를 성숙하게 했다. '밥' 푸르도록 눈물겨운 아이의 말문이 터질 무렵, 바닥을 치던 내 청춘은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죽어갈 듯 죽지 않는 경로당 구석의 감나무처럼 내 삶에도 겨울을 이긴 잎이 돋기 시작했다. 몽환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가도 아이의 작은 떨림에 화답하는 내 모습 속에 살고 싶다는 의지가 아프게 돋고 있었다. 삶의 아픈 경험치만큼 세상은 나를 조금씩 웃자라게 했나보다.
 간혹 남편은 이런 나를 재래시장 모퉁이에 데려다 놓곤 한다.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시장 구석에는 젊디젊은 청년들이 노년들에게 살아가는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다. 청춘은 혼자 만드는게 아닌 듯 그들은 하나같이 어른의 삶을 귀담아 듣는다. 교과서를 펼치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이론이 삶에서는 적용되지 않을 때가 많은가보다. 앞 세대들이 넌지시 이야기하고, 현 세대들이 소리 없이 받아들이는 삶, 그것이 청춘을 위한 준비가 아닐까. 보이지 않는 미래를 개척하고 세상과 맞서며 청춘은 그렇게 무르익고 있다. 세상은 우리에게 유익한 적이었고, 청춘은 가장 빛나는 무기였으며 길들여지지 않은 정신과 육신은 명약이 되어 미래로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절망만은 논하지 말자. 삶은 내가 주인공이 아니던가. 내 곁을 지나간 사람들, 내 옆에 서 있는 사람들, 내 앞에 달려가는 사람들, 모두가 얼마나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더해가고 있는가를 기억해 보라. 
 나는 이미 청춘의 많은 시간을 병으로 탕진해본 사람이다. 냇물 흐르듯 고요히 살다가 어느 여울에선가 보았던 울렁이던 내 모습이 처참해서 돌아서던 그날, 나는 다시는 거울을 보지 않겠노라 약조를 했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연명한 내 과거를 요즘은 자주 돌아본다.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이었다고 그리 자신 있게 얘기하고 싶다. 내가 지금 고아한 눈빛으로 힘차게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아이의 뒤를 따르는 것은, 지금 현실에서 나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으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름답지 않으랴. 불투명한 미래의 이야기들은 청춘에서 품는 씨앗이 아닐까. 아직 여물지 못한 눈빛들이 거리를 오고가고 있다. 처세의 미숙아들, 그것은 바로 나였으며 나의 청춘이다. 준비되지 못하고 맞이한 지금의 청춘을 나도 어느 시점에서는 그리워하게 될까.
 골목 모퉁이에 다시 통증이 일렁인다. 지면으로 미끄러지는 햇살이 반사되어 동공을 찌른다. 봄은 그렇게 눈물겹게 오고 있다. 겨우내 얼었던 산 깊은 골에 미명을 깨우는 진달래의 꽃망울 여는 소리가 어찌도 처연한지, 올 봄엔 또, 누구의 청춘이 온산을 적시려나. 감성적이고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아픔의 늪, 긴, 담장을 따라 담쟁이가 기어오르고, 복사꽃, 벚꽃이 아름답다 못해 처여하게 청춘을 맞으리라. 그때는 산으로 들로 뛰쳐나가 그들의 아픈 청춘을 마음껏 만져주고 싶다.
 영혼의 살을 베는 예리한 칼날의 시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온몸을 태우는 불과도 같고, 때로는 내 존재를 잊게 하는 망각의 늪인 것도 같다. 청춘, 그것은 나를 한없는 심연에서 살려내는 희마이의 가혹한 늪이리라. 나는 어느새 불혹을 향해 하루를 또 켜켜이 얹어 놓는다. 
 골목 모퉁이를 돌자 경로당 마당에 모인 노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세발자전거를 힘차게 밟아대는 아이에게로 집중된다. "안녕하세요!" 아직 청춘의 문턱도 넘지 못한 아이의 웃음이 경로당 구석에 서 있는 오래된 감나무에 가 닿는다. 청춘기를 끝낸 노인들이 아이의 인사에 봄볕보다 더 환한 인사로 화답을 한다.
 올해도 가뭇없이 감꽃이 피고 얼마나 많은 열매가 맺히려나, 한참동안 나무를 올려다보던 노인이 너털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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