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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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바닥/이대흠

에세이향기 2023. 7. 16. 11:10

바닥
                      이 대 흠 (1967~    )
 

외가가 있는 강진 미산마을 사람들은
바다와 뻘을 바닥이라고 한다
바닥에서 태어난 그곳 여자들은
널을 타고 바닥에 나가
조개를 캐고 굴을 따고 낙지를 잡는다
살아 바닥에서 널 타고 보내다
죽어 널 타고 바닥에 눕는다
 
바닥에서 태어난 어머니 시집올 때
질기고 끈끈한 그 바닥을 끄집고 왔다
구강포 너른 뻘밭
길게도 잡아당긴 탐진강 상류에서
당겨도 당겨도 무거워지기만 한 노동의 진창
어머니의 손을 거쳐간 바닥은 몇 평쯤일까
발이 가고 손이 가고 마침내는
몸이 갈 바닥
 
오랜만에 찾아간 외가 마을 바닥
뻘밭에 꼼지락거리는 것은 죄다
어머니 전기문의 활자들 아니겠는가
저 낮은 곳에서 온갖 것 다 받아들였으니
어찌 바닷물이 짜지 않을 수 있겠는가
 
봄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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