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이 대 흠 (1967~ )
외가가 있는 강진 미산마을 사람들은
바다와 뻘을 바닥이라고 한다
바닥에서 태어난 그곳 여자들은
널을 타고 바닥에 나가
조개를 캐고 굴을 따고 낙지를 잡는다
살아 바닥에서 널 타고 보내다
죽어 널 타고 바닥에 눕는다
바닥에서 태어난 어머니 시집올 때
질기고 끈끈한 그 바닥을 끄집고 왔다
구강포 너른 뻘밭
길게도 잡아당긴 탐진강 상류에서
당겨도 당겨도 무거워지기만 한 노동의 진창
어머니의 손을 거쳐간 바닥은 몇 평쯤일까
발이 가고 손이 가고 마침내는
몸이 갈 바닥
오랜만에 찾아간 외가 마을 바닥
뻘밭에 꼼지락거리는 것은 죄다
어머니 전기문의 활자들 아니겠는가
저 낮은 곳에서 온갖 것 다 받아들였으니
어찌 바닷물이 짜지 않을 수 있겠는가
봄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 시작된다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맨스/서효인 (1) | 2023.07.18 |
---|---|
늙은 호박 / 박철영 (0) | 2023.07.16 |
갈치 / 홍일표 (0) | 2023.07.15 |
찬밥/ 문정희 (0) | 2023.07.14 |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0) | 2023.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