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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첫날/권희돈

에세이향기 2023. 9. 7. 20:09

첫날

 

오늘은 그대 남은 날들의 첫날

부디 지난 날의 회한에 물들지 마오

추억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눈꽃

결코 잡히지 않는, 내일을 근심치 마오

희망은 숨어 있는 것

다가서면 멀어지는 신기루

추억은 깃털에 묻고 희망은 별빛에 묻고

밤 새워 한뎃잠을 자고 나온 아침까치처럼

겁도 없이 인간에 내려앉는 저 황홀한 가벼움을

오늘도 반가로이 맞이하시라

 

오오, 오늘은 그대 남은 날들의 첫날

 

휴지

 

더럽다고 함부로 버리지 마라

더러움의 그 근원을 생각하라

안으로 들어가던 모든 순수가

더러움으로 나오는 까닭은 헤아려라

더럽다고 함부로 짓밟지 마라

너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라

눈물 한 방울 나누어 준 적이 있느냐

피 한 방울 나누어 준 적이 있느냐

보아라, 하늘에 뜻을 세운

저 순백의 침묵을 탐욕에 물들지 아니하고

유혹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마음의 뿌리를 거둬내어

백짓장같은 가벼움을 얻을 때까지

자신을 비워내는 단단함 침묵을

기억하라, 마침내 때가 이르러

온몸을 내던져 사랑을 완성하고

어둠을 이슬처럼 넘어 

아침이면 부활하는 새하얀 날개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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