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 박일만
아파트 창문 너머 하늘이 사라졌다
공간을 채우며 빌딩이 점령했다
콘크리트로 덮이고
구름은 더 높은 곳을 찾아 떠났다
언뜻 보이던 햇빛도 장막 속으로 사라졌다
저 높은 건물 속에서
사람들은 공중 부양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틈새에 끼인
키 낮은 초등학교가 숨을 헐떡인다
아이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콩나물처럼 자라
이 나라의 일꾼으로 나아갈 것이므로
어른들은 서슴없이 광장을 메꿨다
메꿔진 하늘
새 한 마리 날지 못하고
매미 한 마리 찾아오지 않는 마천루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지은 날개를 차려 입고
가끔은 새처럼, 가끔은 매미처럼
엘리베이터에 붙어 소리 지를 것이다
인간의 세상은 사라지고
콘크리트 몸집들이 모여 사는 도시가 나타난 일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치부되었을 뿐
오고갈 길이 막힌 바람이
벽에 부딪치며 세찬 소리로 울어댄다
절규,
아우성,
벽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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