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를 찾다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다른 쪽을 위해
열심히 그 행방을 쫓았다
아니, 이미 그것에 길들여진
허전한 내 발을 위해
눈길 닿는 곳곳을 훑다가
가 닿은 곳,
깊숙한 침대 밑에
어둑한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았다
찾다가 포기해 버린 귀고리 한 짝
튕겨 나온 퍼즐 몇 조각
억울하게 화풀이의 대상이 된
찢어진 과속 범칙금 고지서까지
관심에서 밀려난 눅눅한 사연들이
저들의 언어로 웅성거리고 있다
따지고 보면
햇빛 안 드는 세상이 어디 그곳뿐이랴
나는 그곳에서
급하게 서두르다가
얼결에 빗나간 발길질 한번 한 것뿐인
슬리퍼 한 짝을 찾아내어
먼지를 털고 제 짝을 맞춰 주었다
다시 편해진 건
내 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