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고경숙
한 짝은 멀리 부엌문 앞으로 날아간 채
나머지 한 짝이 우는소리 들렸다
엎어져 땅에 코를 박고
메리처럼 울었다
꺾어진 골목 막다른 셋집
낙엽이 수북이 쌓인 토방 밑에서
가끔 우는 고무신은
어느 저녁엔 밀린 기성회비가 되었다가
서리 내린 아침엔
시든 무청 한 단처럼 무거운 다리를 끌고
우체국 앞을 서성이며 전신환을 기다리다가
어느 한밤엔 수족 잃은 늙은 바람처럼
코를 풀어대며 울었다
밑창이 닳아 야들야들한 위장은
선뜻 대문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죽은 전나무 이파리 우수수
부서져 내린 저물녘
필통을 덜그럭거리며 돌아오다
아이는 괜히 메리만 을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