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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뽑힌 못/권선옥

에세이향기 2024. 6. 17. 02:49

뽑힌 못

권선옥


네게 깊이 박히고 싶었으나
망치질을 견디지 못하고 구부러진 나는
너의 고운 살결에 상처만 남기고
나는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네게서 뽑힌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끝내 빠지지도 않아서
구부러진 채로 네게 매달려 있다면
네게는 더 큰 아픔이었을 게다
끝이 무디어 네게 깊이 박히지 못한 죄로
뿌리까지 뽑히어 이렇게
잡동사니 어우러진 못그릇에서
뻘겋게 녹이 슬어
세월에 말없이 몸피가 줄어 간다
이젠 네 몸의 상처도
다른 못이 가려줬을 줄 믿는다
다만 나의 구부러진 사랑을
간간이 되씹어 본다
아직도 들척지근한 단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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