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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가얏고/박시윤

에세이향기 2024. 7. 22. 04:26

가얏고

박 시 윤

 

 

 

바람의 파장에 오동나무 너른 잎이 흔들린다. 빛은 잎을 통과하지 못하고 그늘로 남겨진 지 오래다. 그늘에 가려진 민초들은 계절마다 고개 숙여 말없이 피고 졌다. 고을마다 바람을 동그랗게 말아 쥔 연보랏빛 오동의 꽃은 올 해도 가뭇없이 피어, 꽃등처럼 환하게 켜져 있다. 제 명을 다하고 바닥으로 내려앉아 마지막 숨을 다할 때까지도 꽃들은 멸망한 나라, 잊혀진 이야기들을 전하려 안간힘을 썼다.

홀로 가야천 변을 걷는다. 나는 꽃들이 전해준 전설을 따라 며칠째 끼니도 거르고 가야로 흘러들었다. 꽃들이 최후를 맞으면서까지도 신음하며 읊조렸던 이야기를 찾고 싶었다. 오동나무가 품고 있다는, 멀고도 먼 옛날의 이야기에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천년의 소리는 무엇일까. 세월이 발효된 공명이, 깊은 뜻을 품고 전설처럼 살아남아 소리에서 소리로 전해지고 있다는 말을 믿고 싶었던 걸까. 나는 너른 잎이 만들어 준 그늘 아래에 서서 사뭇 진지해지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세월에 젖어 우연찮게 득음이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욕심이 발동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멸망한 것들은 말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말이 없어야 하는 것일까. 벌건 쇳물의 이글거리는 흐름과 쿵쾅쿵쾅 쇠망치를 두들겨 무기와 농기구를 왕성하게 생산했다던 대장간은 온기를 잃고 붉게 녹슨 적막만이 흐른다. 민초들의 삶 속에 존재하는 애환을 옮겨다 놓았다는 가야금은 줄을 뜯는 손가락도, 울림 판을 튕겨져 나오는 바람도 없이 벙어리가 된 지 오래다. 도대체 소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한참을 웅크리고 앉아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고 있었다.

‘소리를 찾는 게냐?’

노인이 내게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허허, 이 많은 소리들이 들리지 않느냐? 어찌 바로 귓전에 든 소리도 듣지 못하면서 천년이나 잊혀진 소리를 듣겠다고 예까지 온 것이더냐? 쯧쯧쯧, 마음을 끝까지 열지 못한다면 천 년이 다시 간다 한들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을 게야.’

백발의 노인은 온화하면서도 단호했다. 마음을 끝까지 열어야만 소리를 듣게 될 거라는 노인은 이내 물가에서 데려왔다는 오동나무 곁으로 걸어간다. 보이는 것들은 모두 세월 속에 사라졌으니 아직도 남아있는 추억과 애잔함이 있거든 소리 내어 보자고 오동나무를 깨워내고 있었다. 오래 전에 그랬던 것처럼 오동나무는 노인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하늘은 맑아 그 때와 같았고, 땅의 넉넉함도 변함이 없었다. 노인은 나무의 결을 쓸어가며 줄을 뜯기 시작했다. 눈을 감았음에도 마치 보고 있기라도 하는 듯 자유로웠다. 오동나무 골 깊숙한 곳에서 길어 올리는 깊고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지자 멸망한 나라가 다시 일어났고, 잊혀진 이야기가 다시 피어났으며, 천 년을 이어온 민초들의 소박한 모습이 다시 펼쳐졌다.

순장되었던 천 년이 다시 깨어나고 있다고 노인은 눈시울을 적셨다. 가야천과 이천천의 맑은 물줄기가 달려와 서로 부딪치며 만났다. 메말랐던 개울에는 수런거리며 물이 흐르고, 풀은 바람에 스칠 때마다 푸른 대궁으로 서로를 움켜 안고 뿌리를 넓혀갔다. 비옥한 농토에서는 사시사철 곡식이 쏟아졌으며, 가축들은 해마다 머리수를 불렸다. 하늘을 섬기며 종일을 흙에 엎드려 살아온 민초들의 어깨에는 덩실덩실 춤이 내렸다. 아이들은 별처럼 해맑았고, 여인들의 머리에는 소박한 햇살이 내려앉아 반짝거렸다. 모든 것이 부유하고 평화로웠다.

나는 저잣거리에 서 있었다. 열다섯 쯤 족히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삶은 감자를 팔고 있었다. 이따금씩 굶주린 어린 거지들을 만날 때면 아버지 몰래 감자 두어 개씩을 주머니 속에 찔러 주곤 했다. 고맙다는 인사보다 배고픔이 먼저였던지 허겁지겁 씹어 삼키는 아이에게 물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 살 어린 동생이 있어서인지 유독 아이들에게 인심이 후했다. 배고픔을 가까스로 넘긴 사내아이들은 나무막대기를 들고 우르르 몰려 다녔다. 나라를 지키는 장수가 되어 백제와 신라를 멸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기도 했다. 개 중 한 놈은 소녀를 색시삼아 자식 열은 족히 낳겠다는 농익은 소리를 곧잘 해댔다. 그럴 때면 소녀의 낯은 오동나무 꽃보다 더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겨우 감자 몇 개에 저잣거리의 마음씨 곱고 인심 후덕한 누이로 비쳐지고 있었다. 그런 소녀를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중년의 남자가 다가가 가야의 소리를 익혀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소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오래토록 소녀를 지켜보았다.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이상하게도 지켜보는 내내 눈물이 났다.

‘저 계집아이에게서 무엇을 보았느냐? 가야가 보이느냐? 너는 민초의 곱고 여린 심성을 지닌 가야의 여인이었느니라’ 노인이 전해준 말은 오래토록 나를 한 자리에 머물게 했다.

노인은 이따금씩 연주를 멈추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불어오는 바람의 질문에 시종일관 침묵으로 화답하고 있었다. 가야를 버리고 신라에 투항한 악사, 조국을 등진 미안함과 그리움을 평생토록 가슴에 지닌 채 음악에만 몰두해야 했던 이방인, 그것이 노인의 수식어였다. 노인은 잠잠했다. 사라져 가는 왕국을 바라보는 마지막 태자 월광의 한을 품었고, 승자만이 기록으로 남는 역사의 뒤란에 순장될 수밖에 없었던 한 거대한 왕국의 비극을 아파했다.

사방으로 흩어져 이름 없이 자연사되고 마는 소리들을 찾고 싶어 했다. 단호하지만 부드럽고, 맑지만 투박한 소리들은 터지고 아물기를 수차례 반복한 손가락들 끝에서 다시 살아났다. 선녀가 구름을 타듯, 때로는 백성들이 흙 위에서 김을 매듯 미끄러져 갔다. 민초들의 처지를 함께 느끼며, 절절하게 끓어오르는 설움을 놓치지 않고 선율 위에 옮기고자 했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좌절했고 아픔 속에 다시 몰두하며 일어섰다.

그가 물가에서 잘 자란 오동나무를 만난 것은 운명이었다. 하늘과 땅을 본 따 앞 뒤판을 얹고 일 년 열두 달을 상징해 꼬아 얹은 명주실에 비로소 자연을 닮은 소리를 담아낼 수 있었다. 소리는 눌리고 튕기며 울려나왔고, 흔들리면서 천지로 스며들었으며, 가야국의 비옥한 농토에 맑고 아름답게 전해졌다. 가야의 사랑은 깨끗한 것이었다. 하늘을 담으려 했고, 땅을 실으려 했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민초들의 때 묻지 않은 진실을 노래하려 했다.

연주를 마친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토록 순장되어진 채 잊혀진 가야는 역사 속에 비록 한 줄로 멸하였다 하지만, 천년의 풍상을 이기고 지금껏 이어져 온 정체성과 혼은 영원히 이 금 안에 존재한다는 말을 전하고 허허롭게 사라졌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노인이 타던 가야금이 홀로 누워 있었다. 울림통은 여전히 깜깜했고 수수께끼 같은 가야의 이야기들이 소복이 들어앉아 옛 왕국을 궁금해 하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음을 끝까지 열어야만 들을 수 있다던, 삶에 대한 질긴 애착과 같은 소리가 정정골을 튕겨져 나와 은은하게 내 가슴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가물거리며 사라졌을 왕국, 가야로 내가 흘러든 것은 어쩌면 묻혀버린 조국에 대한 아련한 본능은 아니었을까. 기나긴 세월을 품고 금은 신라의 금이 아니라 가야의 금으로 살아남아 왕국을 궁금해 하는 어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 현실과 환상의 어우러짐이 마치도 꿈을 꾸듯 하고 소리가 너울너울 풀려 나가 저 하늘 허공으로 흩어져 천상으로 향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곽흥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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