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 / 윤 영
여름 일요일 저녁이었다.
한 며칠 드난살이 떠나는 계집아이가 보따리 싸듯 짐을 챙겼다. 낯선 곳에선 어둠도 낯설게 느껴지는 걸까. 놋쇠물 같은 불빛들이 질펀한 창밖을 한참 본다. 풋잠이 들었다.
날이 밝자 매미 울음이 호텔을 무너뜨릴 기세다. 이 땅의 여름도 어지간하다. 연꽃으로 흐드러진 길을 달릴 때만 해도 천국인가 싶더니 웬걸. 아침부터 뛰고 달리고 줄서기에 지쳤다. 관광지가 아닌 선계로 가는 길이라더니 고생깨나 하겠다 싶어 맥이 풀린다. 풀린 맥을 다시 거두어들인 곳은 귀곡잔도와 유리잔도를 만난 후였다. 벼랑 끝에 선반을 매달아 뉜 길이 잔도다. 귀신도 곡소리를 하며 지나간다는 길. 내려다보니 오금이 저린다. 깍아지른 절벽에 정신마저 혼미해질 때쯤 가이드가 턱 하니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이 잔도를 건설하기 위해 죽은 사람은 몇 명쯤일까요?"
느닷없이 죽음이라니. 조심스레 예상 숫자들을 나열하자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모자를 고쳐 쓰며 한마디 뱉는다.
"정답은 아무도 모릅니다."라며 부연설명을 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들이 7여 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만들었다고 한다.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이다 보니 죽었다 한들 서류상으로는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들이라고. 다만 공사가 완성된 그날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평생 감옥에서 잔심부름하며 지낸다나. 무지근하다. 그들에게 잔도는 천국이 아니라 죽음터였을 것이다. 한 자 땅 밑이 저승인 곳에서 훗날 이곳을 찾을 땅 위의 사람들을 위해 육신을 맡기지 않았을까. 그것이 명령이든 업보든 칠성판을 진 기분으로 올랐으리라.
도마 위의 고기도 칼을 무서워하는 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무리 사형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두렵지 않았겠는가. 남은 여행이 그다지 맑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리가 되지 않는다. 사형수의 목숨을 놓고 왈가왈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지만 가슴이 주는 답이 먼저 아닐까. 왜 이리 막막할까.
사칙연산이 얽혀버렸다. 이미 죽은 자에게 살아남아 더하는 인생을 산다면 덤으로 얻은 부활인가. 맥박 팔딱이는 생명을 생사의 경계에 썼으니 빼기 인생인가. 그렇다고 나누어지지도, 곱해지지도 않는다. 어찌 목숨에 정답이 있을까. 파리 죽음이나 논두렁 죽음 같은 객사보다 허하다. 죽어서도 죽지 않았다. 아무도 모른다. 얼마나 의지가지 할 곳 없는 죽음이런가. 여전히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말의 물음표는 떠나질 않는데 산 자들의 웃음이 왁자지껄한 느낌표로 한바탕 지나간다.
복잡한 이내 심사인가. 신선이 산다는 별유선경에 들었지만 묵직하다. 만첩청산의 수렁에 깔린 안개 더미가 백골로 만져진다. 천 길 낭떠러지에서 풍장으로 사라졌을 몸, 산짐승들에게 보시라도 했으니 살아생전 죗값이 가벼워졌을까. 높아서 너무 높아서 새들조차 날아오르지 못한다더니 잿빛 날개를 퍼덕이며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어느새 천하 비경과 날 선 봉우리가 비수로 꽂혔다. 염천에 사막을 건너는 발걸음으로 잔도의 끝자락에 오니 소원을 적은 붉은 천조각들이 바람에 너풀거린다. 그들의 상처에 칠해지는 머큐롬보다 붉었다. 선계를 내려다보다가 잠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본다.
불현듯 머릿속을 흔드는 한마디가 떠올랐다.
"너거 살붙이 목숨은 사잣밥으로 가다가 살아났으니 덤인 줄 알거라."
내가 어릴 때는 돌림병에 걸려서 죽는 경우가 많았다. 어른들은 귀신의 장난이거나 신이 내린 형벌로 생각했다. 어떻게든 군림하는 그들을 쫓아내려고 애를 썼다. 구릉이며 골짜기 바위 앞에 촛불을 밝혔다. 그들이 지켜줄 거라는 염원은 촛농처럼 단단하게 굳는다. 간절한 기도로도 어쩌지 못할 때 어른들은 죽은 아이를 지게에 지고 산비알을 오르곤 했었다.
내 나이 예닐곱은 넘었을까. 네 살 터울의 남동생과 쌍둥이 여동생과 함께 홍역에 걸렸다. 목덜미까지 번진 열꽃은 가족들을 애태웠다. 고열과 호흡 곤란에 맥박마저 떨어져 위독한 상태가 되자 할머니는 '지앙맞이'를 서둘렀다. 등성이 너머 용하다는 점쟁이를 부르고 팥떡을 준비했다. 엄마는 이미 시집오기 전 세 명이나 되는 형제들을 마마라는 돌림병으로 잃어버린 아픔이 있었으니 입안이 바짝바짝 탔을 게다.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여동생을 아랫목에 눕혀놓고 할머니를 따라 길을 나섰다. 인월댁 집 모퉁이를 돌아 산길을 오르니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영문도 모르고 굽은 소나무 옆에 기대어 있는 남동생은 이미 가랑가랑 넘어간다. 작은 굿판이 벌어졌다. 새끼줄을 꼬아 흰 종이를 끼운 금줄이 소나무에 감기고 바닥에는 붉은 흙이 콩고물처럼 뿌려졌다. 박바가지를 띄운 항아리에 물이 그득하고 시루떡엔 김이 피어오른다. 멀건 눈알을 굴리며 광대 분장을 한 무당의 푸닥거리는 귀신보다 무섭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 어린 조무래기들 황천길 열리거든 닫아 주시옵고 그저그저 지명대로 다 살고 밥숟가락 가지런히 놓고 땅보탬이나 하시게 하시소."
신은 살아있음인지, 식구들의 간절한 염원 덕분이었는지 용케도 모두 살아남았다. 걸핏하면 할머니가 자주 내뱉던 말처럼 우리 남매들의 목숨은 덧거리일까.
그러고 보면 본질을 벗어난 곳에 외톨이로 떠돌다 돌아오면 그것이 덤이다. 만산홍엽을 보러 떠났건만 푸른 하늘까지 보여주면 그것이 덤이다. 쌀 한 됫박 받으러 갔다가 콩 한 줌 집어주면 그것이 덤이다. 그러니 살아가는 일이 웃돈 같은 거라고 하질 않던가.
그 많은 덤은 바라지 않는다. 다만 덤터기 없는 세상을 꿈꾸며 천문산을 내려온다. 천문에 걸린 안개비가 산을 에워쌌다. 내가 탄 버스는 굽이치는 통천대도의 아흔아홉 고비를 휘감는다. 운전사의 마지막인 듯한 곡예에 발을 뻗디디며 흔들리는 몸을 모아 쥔다. 또 이렇게 살아남았으니 덤인가. 목숨줄 연명하랴 질러대는 비명들 사이로 한 마디의 생애가 지나간다.
여름 일요일 저녁이다. 일주일 만에 드난살이 떠나오듯 싸 온 보따리를 다시 챙겨 무장무장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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