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바람의 지문/장미숙
어디서부터 발원하여 여기까지 밀려온 것일까. 바람이 한입 물어다 놓은 잔물결이 몽글몽글 피어난 이팝나무 꽃 같다. 바다는 물결을 휘감고 뒤척인다. 생명의 꿈틀거림이다. 일시에 일어났다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파랑(波浪)의 모양은 가지각색이다. 작고 큰 게 있는가 하면, 동그랗고 모난 것도 있다. 뭉쳐서 움직이면 곱게 빗질한 머리카락이 바람의 오선지를 두드린다. 그러다가도 어느새 마구 헝클어진 봉두난발이 되기도 한다.
바다 위로 우뚝 솟은 바위 옆 파도가 짓궂다. 겁도 없이 높은 바위벽을 기어오른다. 뒤이어 높이뛰기 선수처럼 놀치다가 곤두박질친다. 부서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무모함이 거대한 거품을 잉태한다. 부서지는 것들은 망설임이 없다. 시간을 쪼개 그 속으로 거침없이 질주한다. 물이 빛으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바위를 빙 둘러 거품이 띠를 두르고 포진해 있다. 바위에는 거친 무법자지만 사람의 눈으로 보면 생동감 넘치는 풍경이다. 아니, 어쩌면 파도와 바위는 상생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해변으로 몰려드는 몰개는 우르르 달려왔다가 와그르르 밀려난다. 물러간 것들은 새로운 파도를 만나 어깨를 마주한다. 섞이고 어울려 끊임없이 손을 잡고 올라오는 파도는 돌무더기에 몸을 부린다. 작고 큰 돌들이 파도에 휩쓸린다. 돌은 바다의 짠 기를 몸에 새기지만 오히려 반지르르 빛을 발한다. 파도가 한 번씩 돌을 품을 때마다 표면은 점점 매끈해지고 두루뭉술해진다. 동글동글한 것들의 옥시글거림이 해변을 생기롭게 한다.
태풍과 비바람으로 세상이 한 번씩 뒤집힐 때마다 어디선가 굴러온 돌은 해변에 터를 잡고 파도와 인연을 맺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울퉁불퉁한 모양으로 개성을 앞세우며 각에 힘깨나 주었을 돌이다. 각이 곡선이 되기까지 돌에 새겨진 시간의 역사가 궁금하다. 돌멩이가 돌티가 되고 모래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파도가 다녀갔을까. 해와 달도 수없이 바뀌었으리라. 아슥한 날들을 촘촘하게 채운 이야기는 화석으로 굳어갔을 터.
작은 여자아이가 몽돌을 주워 이리저리 살핀다. 흠치르르하고 예쁜 게 제 딴에도 신기한 모양이다. 양손에 몽돌을 주워들고 엄마에게로 달려간다. 해변을 뒹굴던 돌의 서사가 아이의 손안으로 옮겨지는 순간이다. 아니, 한 사람의 삶 속으로 스며든다. 바다와 바람과 파도와 햇살이 빚은 몽돌이 아이의 가슴에 작은 희망으로 심어질 차례다.
파도의 무늬가 새겨진 몽돌을 하나 들고 보니 작은 구멍이 송송 나 있다. 사람의 손으로는 조각할 수 없는, 오로지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 놓은 예술품이다. 파도의 역사가 새겨져 있을 것만 같은 돌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귀에 대본다. 돌 속에 바람이 불고 아득한 생의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어린 시절, 내 삶의 바다는 거칠었지만 외롭고 쓸쓸하지만은 않았다. 강한 어머니는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커다란 바위였고 바위를 지붕 삼아 우리 형제는 가난이라는 파도와 맞섰다. 가난은 자잘한 파도처럼 견딜 만했다. 쌀이 부족해도 구황식물이 주린 배를 채워주었고, 들이며 산에 돋아난 나물도 배고픔을 달래주었다. 바다에 잔물결이 일면 아이들이 깨금발로 해변을 뛰어다니듯 들과 산을 오르내리며 우리는 몸의 언어를 배웠다. 그러는 사이 정답고 따뜻한 의초는 저절로 우러나 서로를 보듬어 안게 했다.
거센 풍랑을 만난 건 보릿고개라는 험한 산을 넘을 때였다. 어느 해 보릿고개는 모든 걸 말라비틀어지게 했다. 아이들은 노랗게 얼굴이 뜨고 집마다 한숨이 터져 나왔다. 쌀독을 박박 긁어대는 소리는 대문이 바람에 덜컹대는 것보다 우렁우렁했다. 가장들은 빈 지게를 털털거리며 집으로 돌아왔고 굴뚝에는 연기가 메말랐다. 마당에는 마른 흙이 먼지처럼 날리고 우물에는 돌 틈마다 이끼가 꼈다.
아버지는 그해 지게를 벗어 던졌다. 태어난 뒤 흙밖에 만져본 적 없는 아버지가 밥을 벌기 위해 항구도시로 갔다. 젊은 아버지는 혈기만 믿고 원양어선을 탔다. 낫과 괭이를 잡던 손은 그물의 거친 무늬를 닮아갔고 얼굴엔 바닷바람의 지문이 새겨졌다. 하지만 아버지의 선원 생활은 삼 년을 넘기지 못했다. 아가리를 벌리고 포효하던 시커먼 바다에 빠져 머리를 다친 아버지는 어둠이 가득 찬 바다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 아버지 몸에는 파도가 터를 잡았다. 아름다운 해변을 어루만지는 잔물결이 아닌, 태평양의 거대한 해류 속에 갇혀버렸다. 아버지의 몸에서 흘러나온 해일은 집을 침몰시키고 끝없는 파도를 만들었다. 느닷없이 뒤집히는 바다의 분노 앞에 선 우리에게 안전한 뭍은 멀기만 했다. 어머니는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뉘누리에 휘말린 아버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몸에 구멍을 숭숭 뚫은 파도였다. 구멍으로는 어머니의 한숨이 바람처럼 드나들었다.
아버지의 얼굴에 주름이 깊어지면서 거친 파도는 조금씩 잠잠해졌다. 약에 의지해 살았던 아버지는 파도를 온전히 다스리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풍랑 속에서도 자식들은 자라나 어머니 곁을 떠났다. 시골집에 덩그러니 남은 어머니는 외로움이란 너울을 받아들이느라 눈가가 점점 붉어졌다.
아버지는 생의 끈을 놓았지만, 파도는 내게로 옮겨와 자리를 잡았다. 내 몸에도 파도가 살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부터 바람 소리에 민감해졌다. 거센 파도를 만나 생사의 기로에 섰던 이십 대 후반, 간신히 휩쓸려간 곳에 큰언니의 따뜻한 품이 있었다.
그 뒤에도 크고 작은 뉘누리는 쉴 사이 없이 밀려왔다. 모가 난 곳이 깎이고 깎이기까지 파도가 할퀸 피부는 생채기가 나고 아물기를 반복했다. 조금씩 둥글어지고 있음인지 몰려오는 바람에 휘청거리다 부딪히는 일은 차차 줄어들었다. 땅을 꼭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이 구르다가도 일어서는 법을 저절로 배웠다. 파도에 떠밀려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는 돌이 아닌, 제자리에서 야무지게 파도와 맞서는 돌의 의연함을 배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란 긴 항해에서 끝내 피할 수 없는 파도라면 차라리 받아들여 몸에 새기자는 오기도 생겼다.
한때는 잔잔하고 평온한 삶을 얼마나 원했던가. 그저 평화로운 바다를 꿈꾸었다. 도란도란 속살거리는 은빛 물결 아래 푸른 속살이 설비치는 바다의 신비로움과 햇귀가 품고 있는 바림의 오묘함에 매료되곤 했다. 노을 비껴드는 장엄한 풍경을 대하면 생의 열망이 꿈틀거렸다. 삶도 그와 같이 희망이 펄떡거리고 웃음 물결이 번져 나면 좋으련만 그건 단지 이상향에 불과했다.
인생이란 태풍에 뒤집혀 사납게 울부짖는 바다의 또 다른 모습이다.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 그 무엇, 헤쳐나가야만 하는 순간이 삶이란 바다에 깃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된 지 오래다. 파도가 가슴을 할퀴어도 놓아버릴 수 없는 게 삶이라는 걸 안다. 앞으로 가야 할 길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것도….
잔잔한 바다 앞에서 조금은 잠잠해진 마음의 바다를 헤아리는 사이 노을이 꽃비처럼 떨어진다. 수만 가지 색을 품은 하루가 바닷속으로 빠진다. 새로운 하루를 잉태할 저 수평선 위로 곰비임비 번져 나는 붉은 빛이 푼푼하게도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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