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두부
이영식
짐작하겠지만 취하고 나면 먹어치우는 게 상책이다
왁자한 시장 좌판에 발가벗고 나앉은 아라한(阿羅漢), 제 몸 갈라 먹을 중생 앞에서도 몸가짐 초연하시다
떼구름처럼 엉겼던 잡념일랑 모판에 눌러 짜서 삼베 천으로 걸러냈다
좌우, 어느 쪽 색깔이나 사상에 기울어지지 않는 맛으로 무엇을 도모하지 않는다
두부의 ‘부(腐)’는 썩었다는 뜻이 아니고 뇌수(腦髓)처럼 연하고 물렁물렁하다는 전갈이니
보시라! 네모반듯하게 각이 졌지만 안과 밖 한결같이 순한 생각만 한다
삶의 비린내 진동하는 틈에서도 제가 건너온 불보다 더 뜨겁게 칼 디밀고 들어올 순명(順命)의 시간을 초연히 기다리고 있는 오늘의 두부,
어제의 뼈저린 후회나 내일의 걱정으로 콩새만한 생각에 갇힌 당신께 기원전부터 전해오는 진국의 경전 한 권 올려드립니다
시원하게 끓여 드시고 시냇가 징검돌인 듯 오늘을 건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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