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11/01 3

와목臥木/ 최경숙

와목臥木/ 최경숙  나무가 기어간다. 달팽이가 더듬이를 세워 포복하듯 나무 둥치가 땅에 붙었다. 땅에 누워 몸통을 박은 뿌리는 머리를 하늘로 쳐들었고 줄기는 네댓 개 팔처럼 벌렸다. 생명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인가. 욕망이 생존의 표상으로 비친다. 생명의 끈질김. 밤낮으로 기어가는 나무의 기운이 백 년의 세월을 이겨낸다. 태어나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생명은 없다. 새도 벌레도 사람도 태어나는 곳은 물론, 자라는 곳 죽는 곳도 쉼 없이 바뀐다. 개체마다 종족마다 매번 장소가 달라진다. 하지만 나무는 한 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고 같은 곳에서 죽는다. 땅에 누운 고목의 몸체를 보니 그 생각이 더욱 뚜렷해진다. 김수로 왕릉공원을 찾았다. 유년시절을 추억하며 숲속으로 들어섰다. 가락국의 번..

좋은 수필 2024.11.01

가랑잎자서전/민진혜

가랑잎 자서전​                                                           민진혜​등 굽은 지팡이에 몸을 싣는 저물녘나른한 공원 벤치 낮달 함께 앉은 그대숨소리 바스락바스락, 뼈가 닳은 노인이다​해를 쫓던 녹음이며 뜨건 비도 쪼개 담아한껏 부푼 정복의 꿈 흙에 도로 뱉어낸다바람이 읽는 판결문 무릎 꿇고 들으며​꿈에 기댄 지난날도 돌아보면 아지랑이보풀 같은 겹을 누벼 나이테에 새겨둔 채뒤틀린 뿌리에 안겨 별의 안부 건넨다​제1회  시조 부문 대상                          물풀                                                   백점례불볕 터진 들녘 너머 풀떨기 못물 아래따라지들 몰려들어 스크럼을 짜고 있다..

좋은 시 2024.11.01

주전자 / 최장순

주전자  / 최장순                                                                         ‘酒전자’. 붉은 글씨가 내 눈을 낚아챘다. 술 酒, 삼수변만 보아도 컬컬한 목이 확 트일 것 같다. 주점이 연상되는 기발한 간판의 글씨에 벌써 불콰한 기운이 가슴 저 안쪽에서 올라오듯, 금방이라도 막걸리가 양은 대접으로 콸콸 쏟아질 것만 같다.   한 잔 걸치고 싶은 최근 무렵, 저 간판이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군상들을 불러 모을 것이다. 내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듯 간판 옆으로 집어등集魚燈 처럼 매달린 주전자들은 하나같이 찌그러져있다. 하기야 점잖은 얼굴로 나올 수 없는 곳이 주점이다. 화풀이라도 할 냥이면 냅다 무언가를 발로 차야할 것, 그..

좋은 수필 2024.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