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11/21 2

물독, 그 어느 날의 기억 / 허정진

물독, 그 어느 날의 기억 / 허정진  물 항아리에는 오래된 풍경이 세 들어 산다. 고향 옛집 낡은 공간마다 침묵 속에는 유년의 굴풋한 그리움이 흑백의 시간으로 숨어있다. 식구들 모여앉아 두리반을 펼치던 대청마루, 댓돌 아래 내려서면 아침 빗질 자국 선명한 마당이 있고 아래채에는 뒷간이 딸린 돼지우리가 있었다. 나지막한 돌담에는 호박넝쿨이 여름햇볕 아래 바지런히 기어오르고, 밤이면 빗살무늬로 쌓이는 달빛에 식구들 웃음이 휘영청 계절마다 익어갔다. 부엌은 안방과 대청마루를 끼고 집안 깊숙이 들어앉아 있었다.커다란 정지 문을 삐거덕 열고 들어서면 부엌은 동면에 든 굴속처럼 어두컴컴했다. 문틈 사이로 새어드는 햇살이 없었다면 비밀요새에 숨어있는 것 같았다. 반질반질한 가마솥과 부뚜막 아래에는 시커먼 아궁이가 ..

좋은 수필 2024.11.21

대장간을 엿보다 / 허정진

대장간을 엿보다 / 허정진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보신 적이 있나요. 18세기 말, 조선 후기 시대에 제작된 채색 민화랍니다. 설마 시골 장터에서 대장간 구경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있으려고요. 대장간은 쇠를 녹여 각종 연장을 만드는 곳으로 야방이나 야장간이라고도 한답니다.그림에는 풀무나 화덕, 소탕(燒湯) 외에 세세한 배경은 없지만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동작이 사실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더군요. 앳돼 보이는 젊은이가 긴장된 눈길로 화덕에다 풀무질하고, 나이 든 집게잡이는 벌겋게 달구어진 쇳덩어리를 집어서 모룻돌 위에 올려놓고, 힘 좋은 메잡이 두 명이 긴 나무 자루의 쇠메로 번갈아 내리치는 그림입니다. 손님인 듯한 사내가 지게를 벗어놓고 큼직한 무쇠 낫을 숫돌에 쓱싹거리며 벼리고 있는 모습도 보이고요.“쩡..

좋은 수필 2024.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