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11/13 5

행복한 콩 이야기 / 문갑순

행복한 콩 이야기 / 문갑순    나는 콩입니다. 콩깍지 속에서 형제자매들과 꼭 붙어 앉아 '콩콩콩'하고 내 이름을 불러 봅니다. 촌스러운 듯 하면서도 참 다정한 이름입니다. 나는 순수한 보라색 꽃을 피우고 가을이 깊어 가면 깍지 속에서 동그란 모양새를 가다듬습니다. 하도 오래되어 내가 어디서 이 한반도까지 오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나의 DNA를 추적해 보면 아득한 옛날 오륙천 년 전 드넓은 만주 벌판이 아스라이 기억납니다. 본디 나는 이렇게 통통하고 탐스러운 모양새는 아니었던 듯합니다. 기름진 토양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태양빛을 마음껏 받으며 나는 나대로의 삶의 찬가를 불렀지요. 그때 나와 함께 그 지역에 살던 백의민족, 선량하고 현명하던 그 백의민족은 나를 발견한 기쁨에 천지신명께 ..

좋은 수필 2024.11.13

아버지가 짓는 집 / 염정임

아버지가 짓는 집 / 염정임  아버지는 평생에 세 채의 집을 지으셨다.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마산의 언덕 동네에 지은 집은 안방과 건넌방 외에 뒷방도 있었는데, 뒷방은 방바닥에 전기 코일을 깔아 난방을 해결한 실험적인 방이었다.연구심이 많았던 아버지는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를 하신 셈이다. 그리고 마루가 깔린 조그만 응접실도 만드셨다.아버지는 집짓기를 좋아햐셨다. 틈만 나면 종이에 네모를 그리고 그 옆에 다른 네모를 덧붙이며 평면도를 그리곤 하셨다. 내 방은 어디에 있어요? 하면 네모 한 칸을 옆에 붙여 그리며 여기가 너희들 공부방이야 하셨다.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듯 줄을 긋고 자우고, 다시 반듯하게 네모를 그리셨다.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얹는 날은 상량식을 한다고 떡을 하고 동네 사람들..

좋은 수필 2024.11.13

봉정사 단청 / 강별모

봉정사 단청 / 강별모    단청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고궁이나 사찰에 가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 공부하게 되었다. 붉을 단(丹) 푸른 청(靑)을 단청이라고 하는데, 어찌 붉고 푸른색만 있겠는가. 백의민족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온갖 색을 동원해 그려낸 그림을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단청은 건물의 벽이나 천장, 기둥 등에 그림이나 무늬를 그리고 색칠하는 것을 말한다. 건축물 말고도 공예품, 고분, 불화, 동굴, 가구 등에도 단청으로 장식한다. 단청은 비록 장식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비바람이나 병충해에 갈라지고 썩어가는 것을 방지해 목재나 벽의 수명을 연장케 한다. 거친 표면과 상처를 감춰주는 역할뿐 아니라, 화재나 잡귀 등을 막아주는 상징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작품의 품위와 위엄..

좋은 수필 2024.11.13

숨은 촉 / 김애자

숨은 촉 / 김애자    아침부터 굴착기가 들어와 다리 밑에 쌓인 흙을 퍼올리고 있다. 70년대 초에 새마을 사업으로 놓였던 다리를 헐어내고 다시 놓은 다리를 정비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열 푼 짜리 굿판에 떡값이 일곱 푼 격이었던 구시대의 유물이 사라지고, 철근을 촘촘히 박아가며 새로운 공법으로 소 잃기 전에 외양간 먼저 고쳐놓기 위해 벌인 공사가 시공한 지 한 달 만에 완공을 보게 되었다.지난여름 장마는 끔찍한 재난이었다. 일주일 동안 내리며 붓는 물벼락으로 곳곳에서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고, 수천 평의 농지와 수십 채의 가옥이 토사에 묻혔다. 폭탄이 떨어진 자리처럼 폐허로 변해버린 수마의 상처는 전쟁의 상흔을 연상케 하였다. 그래도 오지마을인 이곳은 몇 군데의 산사태가 난 것과, 범람하는 물살로 약간의..

좋은 수필 2024.11.13

스펑나무야, 더 누르면 아파! / 고경서

스펑나무야, 더 누르면 아파! / 고경서  아주 무시무시한 동물들이다.분홍 코끼리를 통째로 삼킨 보아 구렁이처럼 벌러덩 드러누웠다가 서서히 꿈틀거린다. 묵직한 똬리를 풀어 지붕 위로 기어오르거나 땅을 짓밟고 깔아뭉갠다. 쓰러뜨린 담장에 걸터앉아 거드름을 피우며 생색내는 놈도 여럿 보인다. 하나같이 먹잇감을 잔뜩 움켜쥐고, 더 갖고 싶은 본능으로 무수히 뻗어나간 뿌리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다. 스펑나무를 두고 하는 말이다.앙코르 와트의 따프롬사원이다.크메르 왕조의 최대 전성기를 맞았던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리기 위해 창건한 불교 사원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무들의 제국이다. 다양한 수목들이 이웃으로 살아간다. 지체 높은 거목들의 위용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기기묘묘하게 생긴 나무뿌리들이 ..

좋은 수필 202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