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3/03 3

불쏘시개/곽흥렬

불쏘시개/곽흥렬 벽난로에 불을 지핀다. 세상만사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있을까만, 벽난로 불붙이는 일 역시 생각만큼 그리 만만치가 않다. 거기에도 나름의 요령이 숨어 있는 까닭이다. 착화 순서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적잖이 고역을 치러야 한다. 그 절차가 번거롭고 귀찮아서 몇 번 써보다 내버려 두어 쓸데없이 공간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먼저 로스톨 바닥에 신문지 네댓 장을 공처럼 공글려서 깐다. 그 위에다 삭정이나 잔가지들을 얹는다. 다시 그 위에다 굵은 가지를 얼기설기 채운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가는 장작 몇 개비를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포갠다. 이렇게 해 놓으면 일단 불붙일 준비는 끝이 난다. 라이터를 그어 신문지에 갖다 댄다. 처음엔 종이의 화력으로 화르르 타오른다. 하..

좋은 수필 2024.03.03

파약破約/김용삼

파약破約/김용삼 터미널의 아침은 늘 분주하다. 떠나거나 돌아오거나, 사람들은 막 건져 올린 생선처럼 펄떡대는 싱싱함으로 하루를 연다. 삼투압을 하듯, 나는 그들이 선사하는 활기를 연신 안으로 들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2층의 푸드 코트, 이곳이 나의 일터다. 주방 직원이 출근하기 전에 내 몫을 끝내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인다. 쌀을 안치고, 소스를 끓이고, 반찬을 담고, 단손에 여러 일을 해치우려면 눈코 뜰 사이가 없다. 매일 같은 일도 처음처럼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것이 음식장사라, 그때도 여느 때처럼 분주했을 게다. “식사 되나요?” 화들짝 돌아보니 커다란 캐리어를 잡은 스물 남짓의 청년이었다. 시간이 일러 식사는 곤란하다는 말에 청년의 얼굴엔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 시간에는 터미널 어디에도 허기를 ..

좋은 수필 2024.03.03

사평역(沙平驛)에서 /곽재구

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1954년 ~ , 광주)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

좋은 시 2024.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