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3/25 2

아버지의 우파니샤드/ 손광성

아버지의 우파니샤드/ 손광성 여남은 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어느 날 마루에서 담배를 피우고 계시는 아버지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담장 너머로 내 또래 아이가 토끼 귀를 잡고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토끼가 불쌍했습니다. 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아버지, 토끼는 왜 귀를 잡지요?"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꼼짝 못하니까." 순간 아버지 곁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가 보였습니다. 놈은 어디를 잡아야 꼼짝 못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아버지 고양이는 어디를 잡지요?" "목덜미를 잡지." 나는 쓰다듬는 척하다가 목덜미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번쩍 들어올렸습니다. 놈은 발톱을 세워 할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 그리고 한참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집으로 오다가 두엄을 헤집고 있는 닭이 눈에..

좋은 수필 2024.03.25

고리 / 전미경

고리 / 전미경 침묵이 흐르는 반가다. 닫힌 문마다 정교한 이음이 가문의 결로 자리한다. 가옥을 지키고 있는 텅 빈 뜰엔 고요와 쓸쓸함만이 사대부의 흔적을 대신한다. 바람도 잠시 걸음을 멈춘 듯 작은 움직임조차 일지 않는 비움의 터다. 솟을대문을 사이에 두고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격랑의 역사 속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안과 밖을 드나들며 고리를 만졌을 손길이다. 둥근 테가 가문의 윤기만큼 반지르르하다. 고리를 잡으며 밀고 당긴 시간 속, 어르고 달래는 연습은 감정의 빗금을 수없이 긋고 지우면서 마음을 두드렸을 것이다. 마음의 깊이를 저울질하던 그 고리를 잡는다. 손끝에 닿는 촉감이 쇠붙이의 딱딱함보다는 곡선의 부드러움이 먼저 가 닿는다. 전통가옥에서 만나는 근엄함보다 심연의 성찰을 먼저 안았을 고리다. 통하..

좋은 수필 2024.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