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3/12 2

산방일기 / 이상국

산방일기 / 이상국 ​ 새벽 한기에 깨어 마당에 내려서면 녹슨 철사처럼 거친 햇살 아래 늦매미 수십 마리 떨어져 버둥거리고는 했다. 뭘 하다 늦었는지 새벽 찬서리에 생을 다친 그것들을, 사람이나 미물이나 시절을 잘 타고나야 한다며 민박집 늙은 주인은 아무렇게나 비질을 했다. ​ 주인은 산일 가고 물소리와 함께 집을 보며 나는 뒤란 독 속의 뱀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서럽도록 붉은 마가목 열매를 깨물어보기도 했다. 갈숭어가 배밀이를 하다가 하늘이 보고 싶었던지, 어디서 철버덩 소리가 나 내다보면 소리는 갈앉고 파문만 보이고는 했다 ​ 마당 가득한 메밀이며 도토리 멍석에 다람쥐 청설모가 연신 드나든다. 저희 것을 저희가 가져가는데 마치 도둑질하듯 살금살금, 청설모는 덥석덥석 볼따구니가 터져라 물고 간다 ​ 어느..

좋은 시 2024.03.12

포구에서/황진숙

포구에서/황진숙 저문 해는 진즉 바다에 잠겼다. 등으로 치고받으며 이랑을 만드는 바닷물의 사위도 잠잠해졌다. 집어등 켜고 물살을 가로질렀을 어선들은 닻줄을 내리고 숨을 고르고 있다. 바닥에 널린 자잘한 어구와 낡은 그물에 고여 있는 허름한 하루가 느껍기만 하다. 붉은빛을 사르고 어둠이 내리자, 저 멀리 붙박이 등대에 불빛이 내걸린다. 길 잃은 숨결들 무사 귀환할 수 있도록, 하루의 끝점에 내몰린 이들이 떠돌지 않도록 좌표가 되어 주는 등대가 묵묵하다. 뒤이어 방파제를 따라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살아난다. 물빛이 바뀐 해조음이 낮아지고 부산함이 잦아든 포구가 아늑해진다. 수평선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포구를 지나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둔 수산시장으로 파고든다. 고즈넉한 포구와는 달리 왁자한 소리가 안겨 ..

발표작 2024.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