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3/17 3

가재미가 돌아오는 시간/박금아

가재미가 돌아오는 시간/박금아 ​ ​ ​ ​ 바닷속보다 깊이 누웠다. 물살을 가르던 꼬리도 지느러미도 고조곤히 접었다. 도다리쑥국을 끓이려고 도다리를 사러 갔다가 대나무 채반에 담긴 하이얀 가재미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삼십 마리쯤 되려나. 그곳 사람들이‘미주구리’라고 부르는 물가재미였다. 가재미를 손질하던 여인이 허리를 펴며 일어섰다. “새빅에 잡은 기다예. 만 원에 가져가이쏘오.” 뼛속까지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몸은 한때 목숨이었던 것 같지 않았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주머니는 내가 비싸다고 생각해서 망설이는 줄로 알았던 모양이다. 구워서 먹으면 고소하다며 대답도 듣기 전에 옆 소쿠리에 담긴 것까지 담아주었다. “알배고 낳니라꼬 예비서 그렇지 꾸 무모 꼬시다예. ” 알을 품고 낳느라 살이 다 빠..

좋은 수필 2024.03.17

두 번째 생은 온전히 꽃으로 /정해경

두 번째 생은 온전히 꽃으로 정해경 택배 상자에 담겨 해를 넘기고 내가 그 여자와 마주한 건 햇빛이 부챗살처럼 퍼지는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그녀가 청소를 하려고 상자를 치우던 중 그제야 남아 있는 나와 몇몇 친구들을 기억해 냈어요. 까칠하게 돋은 수염처럼 군데군데 싹이 돋은 것과 말라비틀어진 채 한 뼘이나 되는 줄기를 뻗은 것, 어느 것 하나 볼품없었죠. 그래도 버릴 수가 없던지 대충 씻어 찜솥에 넣었는데 나는 거기서도 제외되었어요. 쪼글쪼글 말라 긴 줄기가 달린 것이 바로 나였거든요. 쓰레기 봉지로 들어가려는 순간 그 여자가 다시 집어 들었어요. 그 순간의 선택이 나를 벼랑 끝에서 구했습니다. 여자는 조그만 수반에 찰랑하게 물을 받아 거기에 비스듬히 나를 눕혔어요. 그러고는 햇살 넉넉한 창가에 자리를 ..

좋은 수필 2024.03.17

완경으로 가는 배 - 오랜 방황의 끝

완경으로 가는 배 - 오랜 방황의 끝 고경자 기대는 잔잔한 빗금으로 만든 그릇입니다 얼굴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은 빗금보다 섬세한 무늬로 햇살의 크기만큼 잘게 부서지는 것은 오랜 시간을 서성댄 증거입니다 왈칵 쏟아내는 울음이 두려워서 눈물을 모른 척 해봐도 번번이 실패라는 누룩이 증식되어 발효되기까지 습지를 떠도는 유목민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생의 굴곡이 아닐까 하여 쉽게 돌아볼 수 없습니다 비로소 완성되어 가는 그림 앞에서도 환하게 웃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이행단계라는 또 다른 건널목이 있어 차단막이 내려진 기찻길 앞에 선 것 같은 초조함 때문일까요 예고 없이 찾아온 빈혈로 쓰러지는 상상을 하면서 때때로 꿈속에서도 이유 없이 쓰러지는 나무를 보았습니다 가마에서 구워진 토기 하나로 명명되어진 ..

좋은 시 2024.03.17